모든 현상에는 원인과 결과가 존재한다. 최고의 사치품으로 불리는 자동차 분야에서는 이 같은 논리가 더욱 명확하게 적용된다. 소비자의 눈에 들지 못한다면 철저히 외면당하는 게 현실이다. 반대로 상품성이 뛰어나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높은 판매량을 세우기 마련이다. 이번에 시승한 BMW의 중형 SUV X3가 대표적인 예다. X3는 BMW SAV(Sport Activity Vehicle) 라인업의 허리 역할을 하며 수입 중형 SUV 베스트셀링카로 꼽히는 모델이다.
그런 X3가 4세대로 진화했다. BMW 코리아는 지난 28일 BMW 드라이빙 센터에서 4세대 X3를 공식 출시하고 시승회를 열었다. 직접 시승을 통해 만나본 뉴 X3는 분명한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350만대 이상 팔리며 BMW의 효자 등극
X3는 X5에 이은 BMW의 SAV 두 번째 라인업으로 E83이라는 코드명으로 2003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당시 1세대 모델은 E46 3시리즈 플랫폼을 기반으로 완성됐으며 개발 단계부터 오스트리아의 마그나 슈타이어와 손을 잡고 완성한 점이 특징이다.
1세대 모델 출시 이후 현재까지 X3는 글로벌 시장에서 350만대 이상 판매되며 BMW 브랜드 내 대표 볼륨 모델로 성장했다. 한국 시장에서도 인기가 높았다. 1세대 출시 이듬해인 2004년 처음 한국 땅을 밟은 X3는 현재까지 5만4392대가 판매된 것으로 집계됐다. 5만대 이상 판매고를 올린 유일한 수입 중형 SUV다.
한층 커진 차체, 매끈한 라인으로 완성한 디자인
이번에 출시된 뉴 X3는 전 세대에 비해 한층 커진 차체 크기가 특징이다. 수치상으로 비교하면 길이는 4755밀리미터(㎜)로 전작 대비 65㎜ 길어졌다. 폭은 30㎜ 늘어난 1920㎜다. 반면 높이는 1660㎜로 15㎜ 낮아졌다. SUV이지만 역동적인 라인을 강조하기 위한 선택이다.
전면 인상은 완전히 달라졌다. BMW의 디자인 헤리티지인 키드니 그릴은 크기가 커졌으며 수직선과 대각선을 조합한 새로운 구조로 변했다. 키드니 그릴의 형태는 스탠다드와 M 스포츠 패키지, M 퍼포먼스 등 모들에 따라 디자인이 달라진다. 또 국내에 판매되는 전 모델에는 그릴 윤곽에 조명이 더해진 BMW 아이코닉 글로우가 적용됐다.
그릴을 중심으로 양쪽에 배치된 헤드램프는 전 모델에 비해 두께를 얇게 다듬어 역동적인 느낌을 강조한 모양새다. 특히 헤드램프를 구성하는 주간주행등의 형태는 ‘ㄴ’ 자를 나란히 뒀던 이전 모델과 달리 겹쳐 놓은 듯한 형상으로 디자인이 변했다. 범퍼 디자인은 면과 선이 조화를 이루는 형태다. 공기흡입구를 범퍼 밑에 두고 키드니 그릴과 같은 실버 컬러의 요소를 하단에 더했다.
후면 역시 변화의 폭이 크다. 먼저 트렁크 중앙에 위치했던 번호판을 범퍼로 이동해 면을 강조했다. 또 T자형 그래픽을 재해석한 테일램프도 적용됐다.
현대적인 감성 가득, 플라스틱 소재는 아쉬워
뉴 X3의 실내에는 운전자 중심의 레이아웃이 적용됐다. 12.3인치 디지털 클러스터와 14.9인치 컨트롤 디스플레이를 하나로 이은 BMW 커브드 디스플레이를 적용하고 최신 BMW 모델과 동일하게 물리 버튼의 수를 최소화했다.
또 입체적으로 다듬은 대시보드 형태와 스마트 인터렉션바는 이전 모델과 달리 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인상적인 부분은 다른 최신 BMW 모델과 달리 인터렉션바의 면적을 줄인 점이다. 시각적인 만족도를 높이는 동시에 야간 주행 시에도 불편함이 느껴지지 않을 구성이다.
차체가 커진 만큼 실내 공간은 여유롭다. 2열에 성인이 앉아도 무릎공간이나 머리 공간의 부족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또 4세대로 진화하면서 이음새가 없는 파노라믹 글라스 루프를 적용해 1열과 2열에서 느껴지는 개방감이 높아졌다.
트렁크 적재 공간은 전 모델 대비 20리터(ℓ) 늘어난 570ℓ며 2열을 접을 경우 최대 1700ℓ까지 늘어난다. 개구부도 넓은 편이라 큰 짐을 싣기에 편의성이 높아 보인다.
실내 공간에서 아쉬움이 느껴진 부분은 플라스틱 소재다. 시승한 모델은 엔트리 트림으로 고사양 모델과 달리 플라스틱 사용 면적이 큰 편이다. 특히 소재의 감촉은 전혀 고급스러움이 느껴지지 않는다. 가격을 생각하면 분명 아쉬운 부분이다. 3시리즈에 사용된 갈바닉 스위치를 곳곳에 배치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BMW 오퍼레이팅 시스템 9의 사용성은 매우 높은 편이다. 퀵 셀렉트 기능을 지원해 하위 메뉴로 이동 없이 간편하게 각종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조작할 수 있다. 특히 T맵 기반의 한국형 내비게이션 시스템이 더해진 점은 높은 점수를 받아 마땅하다. 휴대전화를 연결하지 않아도 T맵을 사용할 수 있으며 목적지를 설정할 경우 클러스터와 HUD에 자동으로 연동돼 사용 편의성이 매우 높다.
세단의 승차감 더한 SUV
이번에 시승한 4세대 X3는 엔트리 트림인 뉴 X3 20 x드라이브로 2.0리터(ℓ) 직렬 4기통 터보 가솔린 엔진을 탑재하고 있다. 최고출력과 최대토크는 각각 190마력, 31.6킬로그램미터(㎏·m)다. 최근 고마력 대 차량들의 수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190마력이라는 출력은 그리 감동적인 수치는 아니다. 하지만 뉴 X3는 달랐다. 일상적인 환경에서 출력에 대한 갈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가속 시 꾸준히 힘을 발휘하면서 속도를 높이는 능력이 꽤 만족스러웠다. 4기통 엔진답지 않은 부드러운 회전 질감과 정숙성 역시 좋다.
이 같은 시원한 가속이 가능한 이유는 48V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 덕분이다. 해당 시스템은 11마력을 내는 스타터-제네레이터를 활용해 엔진을 보조해 주행 성능과 연료 효율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뉴 X3는 48V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통해 이전 세대 대비 1.1㎞/ℓ 높은 10.9㎞/ℓ의 복합 연비를 달성했으며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153g/㎞로 11.6% 줄었다. 효율성과 성능 측면에서는 이점이 있지만 오토 스탑앤고를 비활성화할 수 없다는 점은 아쉽게 느껴졌다.
뉴 X3의 핵심은 승차감이다. 일반적으로 SUV는 특유의 승차감을 전달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뉴 X3는 정교하게 다듬은 서스펜션과 강성이 높은 차체의 조화가 높다. 서스펜션은 노면을 대응하는 능력이 높은 수준이다. 크고 작은 요철을 넘을 때 유연하게 움직이며 높은 승차감을 제공했다. 또 역동적인 주행 시에는 최대한 롤을 억제하려는 움직임도 보였다.
스티어링 감각은 다분히 BMW답다. SUV임에도 불구하고 스티어링 휠을 돌리는 것만으로도 운전자가 의도한 라인을 그대로 따라왔다. 높은 속도로 코너를 진입해도 언더스티어는 발생하지 않았다.
BMW와 최고의 궁합을 보이는 ZF 8단 자동변속기의 움직임은 역시 대단했다. 가다 서기를 반복하는 상황에서도 허둥거리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고 가속 상황에서는 최대한 부드럽고 빠르게 변속했다. 스포츠 모드에서는 최대한 엔진회전수를 높게 쓰며 운전 재미를 위해 약간의 충격을 허용하는 느낌이었다.
4세대로 진화한 X3는 파워트레인과 차체의 조화 상당했다. 거기에 덩치를 키운 차체가 주는 공간, 매끈한 디자인은 분명 매력적이다. 또 4기통 가솔린과 디젤, 6기통 가솔린 등 취향과 용도에 맞게 꾸린 다양한 파워트레인 구성 역시 장점으로 느껴졌다. 역동적인 주행 감각과 SUV의 활용성, 그리고 새로움을 원한다면 뉴 X3는 분명 좋은 선택지다.
허인학 기자 ih.he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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