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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과 저승 사이 건설현장’에서 노조가 무력화된 뒤 생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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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 초기 윤석열 정부는 지지율 하락세가 장기화된다 싶으면 ‘노조 탄압’을 반복했다. ‘건폭’ 발언이 상징하듯 건설노조가 주요 표적 중 하나였다. 그 여파로 건설노조 조합원이었던 고(故) 양회동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다른 건설노동자들의 삶도 무너졌다.

정부 지지율과 맞바꿔 건설노동자들이 빼앗긴 것은 무엇이었을까. 노조로 뭉치기 전 건설노동자들의 열악한 삶, 노조가 만들어진 뒤의 변화, 정부의 ‘노조 탄압’ 이후 다시 ‘쌍팔년도’로 회귀한 건설현장의 상황, 건설노동자들이 꿈꾸는 인간다운 삶에 대한 이야기를 5편의 글로 전한다. 편집자

다시 죽음의 건설 현장으로…안전보호구도 안전통로도 ‘개인이 알아서 해라’?

‘이판사판 공사판’이라는 말이 있다. 원래는 다른 뜻이지만 ‘이승과 저승 사이 건설 현장’이 있다는 표현으로, 위험하고 열악한 건설 현장을 빗대어 하는 말이다. 지난 2023년 한 해 356명이 산업재해로 사망을 했다. 편의점보다 많다는, 9만 개에 이르는 건설사들의 과도한 이윤 경쟁이 불법하도급을 부추기고, 이는 다시 무리한 속도전으로 노동자들을 위험으로 내몰았다. 대부분의 사고는 추락을 하거나, 물체에 맞거나, 부딪히는 경우다. 사고 유형만 봐도 아주 기본적인 안전보호구 지급이나 안전 설비만 갖춰져 있어도 일어나지 않았을 사고들이다. 그런데 적지 않은 현장에서 안전모조차 지급되지 않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지급 확인란에는 서명을 받아 갔다. 그렇게 보고서를 올리고 받은 ‘안전장비 구입비’는 어디로 갔을까?

“안전모, 벨트, 안전화, 일단 거기(지급 확인란)에 다 서명을 해야 돼요. 그래놓고 주지는 않고…. 현장 들어가서 보면 안전모가 다 틀려요. 갖고 와서 쓰니까. 여기 뭐, ○○건설 안전모 그걸 쓰는 사람은 한 10%도 안 돼.”

안전난간을 설치하지 않아 떨어져 죽고, 추락위험 장소인데도 작업발판을 설치하지 않아서 사고가 났다. 개구부 덮개를 부실하게 설치해서, 추락 방호망을 설치하지 않아서 일하던 사람이 떨어져 죽었다. 삶과 죽음이 아주 간단한 안전조치 하나에 갈려 나갔다. 그리 어렵지도 않은 안전시설 하나를 다들 안하니까 관행처럼 하지 않았다.

“아니, 현장에 안전 통로가 없어요. 알아서 그냥 철근 타고 넘어가야 되고. 저기 유로폼 갖다 대놓고 거기로 올라 다니고 그런다니까. 그래 놓고 이제 시에서 나온다, 그러면 그때 설치를 하는 거야. 그게 현실이라니까. 노조 있을 때 같이 ‘안전 통로 해 주시오. 안전하게 다닐 수 있게’ 그 얘기를 지금 현장에서는 하지도 못하고 다 그냥 넘어 다녀.”

시늉만 하는 안전교육, 그나마도 배제된 이주노동자

안전보건교육은 노동자가 안전하게 작업하기 위해 필요한 안전작업 방법이나 주의사항을 교육해 사고를 예방하는 가장 기본적인 조치이다. 그러나 현재 건설 현장 안전교육은 대단히 형식적이다. 노동자들을 교육장에 앉혀 놓고 사진을 몇 장만 찍으면 그만이었다. 그리고는 노동자들에게 교육을 받았다는 서명을 받았다. 그렇게 안전교육은 문서상으로만 이뤄졌고, 그 문서는 안전을 관리했다는 ‘증거’가 됐다.

“서류를 만들기 위해서 사진 찍고 사인 받고 땡. 그러면 조사 나오는 사람들은 그것만 있으면 끝이잖아요? 문서로만 확인하니까. 현장은 뭐 확인도 안 하니까. 그걸 악용하는 거죠. 회사들은….”

이주노동자의 안전교육은 더 심각했다. 건설 현장 이주노동자는 올해 공식적 통계만 11만 8735명이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포함하면 그 수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수많은 이주노동자가 건설 현장에서 일을 하고 있지만, 이들이 참여할 수 있는 교육은 없었다. 한국어를 모르는 이들에게 통역사는 고사하고, 모국어로 번역된 안내문조차도 찾아보기는 힘들었다. 건설사들은 이주노동자에 대한 인력 의존도는 높였지만, 이들의 안전을 위한 대책은 마련하지 않았다.

“의사소통이 안 되니까. 그냥 앉아 있어요. 말을 해도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어요. 제일 시급한 게 이거 아닌가 싶어요. 위험한 순간을 보고 이야기를 해도 무슨 말인지 모르거든요. 그게 답답하죠. 현장에서 긴박할 때 이야기가 안 되니까….”

작업중지권은 글자일 뿐, 위험하다 말하면 짤려

산업안전보건법에는 산재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할 수 있는 ‘작업중지권’이 명시돼 있다. 특히나 위험 작업이 많은 건설노동자에게 작업중지권은 가장 필수적인 권리다. 그러나 고용이 불안정한 건설노동자들이 작업중지권을 실제로 행사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했다. 작업 중지를 하게 되면, 그만큼 공정이 늘어지고, 공사비가 늘어날 것이라는 염려 때문에 잠깐의 멈춤도 허락되지 않은 채 건설노동자들은 위험으로 내몰리고 있었다.

“노동조합 있을 때는 정말 위험할 경우 ‘위험하니까 작업을 못 하겠다’하면서 작업 중단을 요구할 때도 있습니다. 근데 지금은 거부하면 바로 잘립니다. 위험한 곳이라도 들어가 일을 해야 돼요. 현장에는 뭐 작업중지권이라고 그런 거는 써 놨더라고요.”

하루라도 빨리 일을 끝내려는 건설사는 작업을 중지한 노동자를 자르겠다고 압박했고, 책임을 묻겠다는 말로 건설노동자를 위험으로 내몰았다. 노동자들 스스로도 해고 위협과 물량 압박 때문에 위험해 보여도 작업을 중지할 수 없었다. 폭염으로 쓰러질 것 같아도 이 일을 끝내지 못하면 다음 일이 끊길까봐 ‘작업 중지’를 차마 입에 담지 못했다.

▲ 위험한 환경에서 고소작업을 하고 있는 건설노동자. ⓒ건설노조 경기중서부건설지부

늘어나는 부당해고와 차별노조탄압은 곧 고용배제 “여기는 조합원 못 들어온다.”

정부 탄압 과정에서 건설노조 간부들에게 적용한 핵심 혐의는 ‘조합원 채용 강요’였다. 건설노조가 건설사에 조합원 채용을 요구한 것이 불법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건설노조와 사용자단체가 맺은 단체협약에는 ‘회사는 개설되는 현장에 조합원이라는 이유로 고용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조항이 있다. 이에 따라 건설노조는 각 현장에서 조합원 고용 배제를 하지 말 것을 요구해 왔다. 그런데 정부는 이것을 채용 강요라고 했다. 직업안정법은 노동조합을 인력공급 주체로 규정하고 있다. 노동조합이 건설사에 조합원 채용을 요구할 수 있다는 법적 근거이다. 그러나 정부와 건설업체는 한 몸으로 뭉쳐 건설노조의 채용 요구를 불법으로 몰아갔다. 그러면서 오히려 조합원 고용을 배제하고 차별하는 데 집중했다. 조합원이라는 이유로 고용을 거부당한 건설노동자들은 먹고살기 위해 노조를 탈퇴하거나 조합원 신분을 숨겨야 했다.

“다들 그래요. 일단 내가 조합원이다 하면은 인제 그 채용 거부당할까봐 말을 못하죠. 저도 저번에 일을 들어가기로 돼 있었는데, 이 소개 시켜준 사람이 제가 조합원이 아닌 줄 알고 인제 소개해 준 거예요. 근데 제가 우리 지부 체육대회에 나갔다가 사진이 찍히고 했나 봐요. 그러니까는 그거를 그 사람한테 누가 전달해 줬나봐. 전화가 왔더라고. ‘뭐, 탈퇴 안 했네?’ 그래가지고 그 현장 못 들어갔죠.”

‘조합원’은 ‘당연 해고’ 사유 “노조 탈퇴 안했네?”

고용을 배제하기도 하지만, 조합원들에 대한 부당해고도 심각했다. 조합원 신분을 숨기고 현장에 들어갔다가 신분이 노출되면 곧바로 해고하거나 노조를 탈퇴하라고 종용했다. 탄압이 지나갈 때까지 “조금만 버텨보자”고 했던 조합원들도 당장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노동조합을 떠나야 했다. 지난 1년간 건설노조 조합원 3명 중 1명은 그렇게 노동조합을 떠났고, 함께 일했던 팀원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저기 뭐야, 작년 3월에 조합팀 현장이 끝나면서 조합팀이 뿔뿔이 흩어졌어요. 이제 일반팀으로 갈 수밖에 없잖아. 조합팀은 안 받아주니까…. 근데 저기 봉담 ○○건설이라고, 거기 이제 일반팀으로 들어갔는데, 들어가서 이제 한 20일이나 일했나? 이게 조합원인 게 알려져서 해고가 됐어요. 그래서 해고 투쟁도 하고….”

작업구간을 특정하고, 그 구간을 벗어나면 해고하는 경우도 있었다. 부천의 한 아파트 신축현장 G토건은 철근 조합팀을 특정 구간에서만 일하도록 했고, 이 구간 작업을 수시로 데마(일이 취소되거나 없어지는 것을 뜻하는 말)를 냈다. 한 달을 거의 일 없이 지낸 조합원들은 현장 내 다른 구간으로 가서 일을 했고, 그 일을 빌미로 집단으로 해고됐다. 이런 사례는 이곳뿐만 아니었다. 물량이 남아 있어도 어느 날 갑자기 예고도 없이 짐 싸라고 통보했다. 못 나가겠다 버티면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무슨 근거로 잘렸는가 하면, 우리가 일하는 구간이 계속 데마가 나는데, 우리는 지하층만 하라 이거야. 그때가 4월 25일이었는데, 우리 (한 달 동안) 8일 일했거든. 그럼 25일 동안 8일 일 했으면 사람 굶어 죽잖아요. 그래 가지고 우리가 지상 층에 올라가서 일 그냥 했어요. 일당 안 받고. 이게 그랬다고, 자기 말 안 들었다고 잘라버린 거야.”

조합원에 대한 고용배제와 차별, 부당해고가 남발하고 있지만 정부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경찰은 오히려 해고된 노동자들에게 ‘노조 빼고 협의하라’며 회사 편만 들었다. 그렇게 든든한 뒷배를 얻은 건설사들은 ‘노동조합 조끼 벗고 들어오라’며 부당노동행위를 서슴없이 해댔다. 건설 현장의 감시자 역할을 해 오면서 건설노조 조합원임을 자랑스러워했지만, 그런 자존감이 물거품이 되어가고 있었다.

건폭몰이가 바꾼 건설 현장, 정말 ‘정상화’인가

정부 탄압 이후 건설 현장에서 사측과의 대화는 단절됐다. 윤석열 정부가 만들어 낸 ‘건폭’이 등장한 이래 건설사들은 건설노조의 말과 행동 전부를 ‘협박하는 거냐?’라는 말로 도리어 협박했다. 보수언론에서는 ‘건폭과의 전쟁, 원칙 세우니 평화가 왔다’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건설사는 노조 협박 굴복 안 하고, 정부는 불법행위를 강력단속해서 30년 묵은 악습을 해결했다’라고 1면 기사에 실었다. 그들에게 ‘원칙’과 ‘평화’란 무슨 의미일까.

정부 역시 건설노조 탄압 이후 현장 상황을 ‘건설 현장의 정상화’라고 말했다. 건설사 마음대로 하는 무법천지 현장, 안전관리비 빼먹고 자재비 빼먹고, 인건비 후려치기가 난무하고, 장시간 노동을 통해 물량을 쳐내느라 골병드는 노동자, 그 골병 든 노동자의 등골까지 빼먹으면서 극한의 이윤까지 짜내는 건설 현장. 이것이 바로 그들이 말하는 ‘정상화’였다. 지난 2023년 2월 21일, 당시 원희룡 국토부장관은 건설노조가 ‘건설사의 안전미비 약점을 빌미로 협박한다’고 했다. 안전을 지키라고 하는 요구를 ‘약점을 잡고 협박한다’고 인식하는 수준이니 ‘건설 현장 정상화’에 담긴 뜻이 무엇인지 충분히 알고도 남는다. 그렇게 정부는 건설자본의 오랜 숙원이었던 ‘건설노조 없던 시절’로의 회귀를 도왔다.

건설 현장을 20년 전으로 회귀시킨 이유, 정말 법치 때문인가?

▲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정부의 노조 탄압에 항의하며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 ⓒ건설노조 경기중서부건설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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