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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정부가 ‘국가폭력’으로 짓밟은 건 평범한 삶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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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 초기 윤석열 정부는 지지율 하락세가 장기화된다 싶으면 ‘노조 탄압’을 반복했다. ‘건폭’ 발언이 상징하듯 건설노조가 주요 표적 중 하나였다. 그 여파로 건설노조 조합원이었던 고(故) 양회동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다른 건설노동자들의 삶도 무너졌다.

정부 지지율과 맞바꿔 건설노동자들이 빼앗긴 것은 무엇이었을까. 노조로 뭉치기 전 건설노동자들의 열악한 삶, 노조가 만들어진 뒤의 변화, 정부의 ‘노조 탄압’ 이후 다시 ‘쌍팔년도’로 회귀한 건설현장의 상황, 건설노동자들이 꿈꾸는 인간다운 삶에 대한 이야기를 5편의 글로 전한다. 편집자

어느 때보다도 더웠던 지난 여름, 등굣길에 나선 한 초등학생을 유심히 보게 된 일이 있었다. 그 학생은 시멘트 바닥 위 오도 가도 못하는 지렁이 한 마리를 뚫어져라 응시하더니, 가방에서 텀블러를 꺼내 물을 부어주었다. 순간, ‘아이가 참 인간적이다’라는 생각이 스쳤다. 평소 뜨거운 햇볕으로 나오는 지렁이들을 보며, ‘왜 쟤네들은 이 더운데 나왔지? 나오면 뻔히 말라죽는다는 걸 알지 않나?’라는 생각만 했던 터에 약간은 충격이었다. 습한 데 사는 지렁이가 장마철이나 햇볕이 뜨거운 날 왜 밖으로 나오는지 과학적인 이유야 있다지만, 물을 부어주겠다는 생각도, 시멘트 위에 있는 지렁이를 풀숲이나 흙이 있는 곳에 옮겨줄 생각은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

그 아이가 인간적이라 느낀 건, 필자가 ‘인간다움’에 대한 철학적인 뭐가 있어서도 아니고, 힘없는 지렁이에게 전능해 보이는 인간이 시혜를 베풀 줄 알아서도 아니라, 나는 한 번도 생각해 내지 못했던 일을 그 아이가 했기 때문이다. 살고자 사투를 벌이는 지렁이를 짓밟거나 무시하지 않고, 조용히 그 사투를 응원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어렵고 힘든 생존 투쟁의 현장에 가면 ‘인간답게 살아보자’라는 구호를 종종 듣는다. ‘인간다움’의 정의나 기준은 천차만별이다. 가방의 용도보다는 브랜드가 더 중요하고, 승차감보다는 하차감이 차를 고르는 가치의 기준이 된 지금은 더욱 그렇다. 그러나 분명한 건 생존 투쟁의 현장에서 외쳐지는 ‘인간답게’는 비교 우위에 서겠다는 것도, 부귀영화의 롤모델이 되고자 하는 것도 아닌, 생명권과 안전권이라는 삶을 사는 가장 기초적인 요구란 점이다. 그래서 그들의 투쟁은 죽을 힘을 다하는 것이 되곤 한다.

문제는 그 상황까지 내몰리게 된 이유다. 건설노동자들은 공공의 안녕과 질서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국가폭력의 피해자다. 명백한 피해는 있으나 가해자인 국가는 견고하다. 생명과 안전을 외치던 노동자들에게 누구보다 든든한 역할을 했어야 할 국가는 자기 역할을 하고 싶지 않았다면, 그냥 지켜보기라도 해야 했다. 이렇게까지 짓밟고 무시하고, 고립시키며 노동자들의 삶을 파괴하는 짓은 하지 말아야 했다.

▲ 윤석열 대통령과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자료사진). ⓒ연합뉴스

건설노동자들이 말하는 “인간다운 삶”

‘어이’, ‘야 이 새끼야’, ‘노가다 주제에’라는 말들을 밥 먹듯이 들었다. 누구보다도 고된 노동을 하지만 돌아오는 건 반말에 욕설, 무시, 저임금, 임금체불, 상납 요구였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위험한 현장에서 일하면서 자신의 생명을 ‘운’에 맡겨야 했다. 불쌍함이나 측은지심의 마음에 호소하고자 하는 말이 아니다. 누군가가 이렇게 살고 있다면, “이게 정상적인가?”를 묻는 것이다. “도대체 이런 상황이 내가 아니면 용인될 수 있는 것인가?”를 묻는 것이다. 정상적이지도 않고, 내가 아닌 누구도 당해선 안 된다. 하지만 이런 일들을 십수 년, 수십 년 당해온 건설노동자들은 그런 환경에서도 인간다운 삶을 꿈꿔왔다.

“ㅈ, ㅅ 욕설없이 ○○씨가 된거죠. 막말과 욕설은 기본이었어요. 이제 제 이름을 부르죠. ○○씨, 이렇게 부르니 기분이 좋죠. 욕설과 막말 들으며 일하지 않는 게 건설 노동자의 진짜 삶이지.”

“내 통장으로 임금이 들어와요. 전에는 그렇지 않았어요.”

“현장에서 일하다 쉴 수 있는 공간이 생겼어요. 화장실도 변변히 없었고, 사람들이 지나가다 볼 수 있는 데서 옷을 갈아입기도 했어요. 지금은 화장실도 편히 가고 그것도 깨끗한 화장실, 일하다 쉬는 시간과 공간이 있으니 좋죠.”

직장에서 상사나 선배 동료들이 나의 이름을 부르고, 잠시 쉬는 시간에 들러 커피 마시며 담소도 나눌 수 있는 공간이 있고, 내가 일했으니 내 명의로 된 통장으로 임금이 들어오고, 참지 않고 바로 갈 수 있는 화장실은 지극히 평범하고 당연하다. 그런데 건설노동자들은 이것도 인간답게 사는 거라 말한다. 물론 이조차도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니다. 모두 요구하고 투쟁했기에 가능했던 일들이다. 누군가에겐 당연한 것들이, 건설노동자들에겐 매순간이, 모든 공간이, 투쟁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었다.

“토요일 날 이렇게 조금 시간이 있다 보니까 가족들과 저녁도 먹을 수 있는…. 인간답게 사는 거. 가족한테도 잘할 수 있는 부분이고 이래저래 좋았어요.”

“예전에는 지방으로 일하러 다니고 했는데, 노조 가입하고 집 근처 쪽에서 출퇴근 할 수 있어서 좋지요. 이전에는 정말 뭐…. 퇴근해서 빨리 잠자기 바쁘고, 아무 생활이 없었어요. 이제는 숙소 생활 안 해도 되고. 그런 거죠.”

“법적으로는 유급 휴일이 있는데, 우리는 안 됐었거든요. 이제는 적용되다 보니 여유가 생기면서 가족들이랑 뭐 이것저것 다 할 수 있어요.”

“내 지역에서 일을 하게 되면, 가정에 들어가게 되잖아. 지역 주민이 내 집 앞에서, 현장에서 일을 하게 되면 가족들하고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시간도 많지.”

“집 대출 해 가지고 뭐 애들 공부시키면서 차근차근 갚아 나가는 게 평범하고 인간적인 삶이지.”

우리는 왜 직장에 나가 돈을 벌까 생각하면, 자신이 꿈꾸었던 세계 일주나 여행을 가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좋은 차를 사거나 조금 넓은 집으로 이사하거나 하는 바람과 기대가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혼자 사는 사람들은 자신의 꿈과 생활의 안정을 위해서, 가족이 있는 사람들은 가족 구성원들의 꿈에 조력하고 행복하고 단란한 생활을 하고 싶어서이기도 하다. 건설노동자들이 말하는 인간다운 삶 역시 마찬가지다. 안정과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가정, 가족들과 외식도 하고 여행도 해보고, 두런두런 모여 앉아 일상을 나누는 게 행복이라고 말한다.

건설노동자들이 말하는 인간다운 삶은 지극히 평범하다. 이 평범한 것을 조금이라도 누리는 방법은 노동조합 가입뿐이었다. 건설노조 조합원이 있었던 사업장의 노동자들이 휴식 시간을 여유롭게 갖고, 다 같이 식구처럼 일하면서 서로 존중해 주는 모습이 부러워서 건설노조에 가입했다. 일하고도 월급을 떼이면서 계획했던 일상들은 무너지며, 월급을 도둑맞은 게 아니라 삶을 도둑맞는 것 같아 건설노조에 가입했다. 운에 맡겼던 내 생명은 건설노조와 함께한 현장 안전 활동으로 지킬 수 있었다. 그래서 그 순간이 행복하고 인간다움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내가 건설에 노가다 다니다가 퇴직금도 다 받아 봤다고 자랑했어.”

“야, 이 정도면 건설노동자도 좋은 직업이다. 옛날 노가다가 아니라 그냥 건설노동자라고 친구한테 말하지.”

“이젠 내 삶이 자랑스러워.”

▲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인간답게 살고 싶다’라고 적힌 손현수막을 들어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국가가 폭력으로 진압한 건, 노동자의 평범한 삶 그 자체였다

노동자들의 삶과 투쟁의 역사를 접하면서 가장 두려웠던 말이 있다. 권력과 자본을 가진 자들이 “대를 위해서 소는 희생될 수 있지.”, “배 한 척 띄우는데 목숨 몇 개는 바쳐야지.”, “일하다 보면 한두 사람 죽는 건 어쩔 수 없는 거잖아.”라는 말이다. 우리 사회에서 노동자는 도구로 쓰임을 당하는 물건 정도로 취급받아 왔다. 건설노동자는 그 중에서도 가장 밑바닥 인생으로 불려 왔다. 건설노동자가 함께 한 건설노조의 역사는 기울어진 시계추를 바로 잡고, 인간으로서의 삶을 선언하고 찾아온 과정이었다. 그 험난하고 어려웠던 시간들의 성과는 지극히도 평범한 인간적인 삶이었다.

‘국가폭력은 건설노조를 탄압한 것이다’라는 말은 정확하지 않다. 국가폭력은 노동자의 평범한 삶을 파괴했고 일상을 무너뜨렸다. 알량하게 내세운 법질서는 오로지 자본의 이익을 위해서 노동자의 삶을 파괴하는 목적으로만 사용됐다. 너무도 거대한 폭력으로 건설노동자들은 심리적 한계 상황에 와 있다. 평범함을 꿈꾸는 게 죄가 되는 나라에서 우리 모두는 안전하지 않다. 평범함을 꿈꾸는 게 죄라고 말하는 국가는 차라리 없는 게 낫다.

프레시안
content@www.newsbel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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