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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순영 칼럼] 현대의학의 영웅과 위대한 발견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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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빅토르 즈다노프와 윌리엄 포에지- 천연두 박멸을 이끈 이름 없는 영웅

인류를 가장 많이 괴롭힌 전염병 세 가지는 천연두, 흑사병, 그리고 인플루엔자다. 천연두는 그중에 가장 지독해서 치명률이 30% 이상이고, 살아남아도 곰보나 장님이 된다. 이집트의 파라오 람세스 5세의 미라가 왕가의 계곡에서 발굴되었을 때(1898년) 발굴자를 놀라게 했던 것은 천연두의 전형적인 피부 흉터였다. 그의 미라는 불명예스럽게도 천연두가 최소 3천 년 전부터 있었다는 고고학적 증거가 되었다. 고대 아테네의 명장이며, 민주주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정치가이며, 파르테논을 비롯한 여러 신전의 건설자인 패리클래스는 역사가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 천연두와 흡사한 전염병으로 사망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천연두를 일으키는 이중가닥 DNA 유전자를 가진 바리올라 바이러스는 20세기에도 3~5억 명을 살해하였지만, 드디어 인류의 반격도 시작되었다. 반격의 주인공은 소련의 빅토르 즈다노프(Viktor Zhdanov, 1914~1987)와 미국의 윌리엄 포에지(William Foege, 1936~)다.

즈다노프는 러시아 제국의 Shtepino (우크라이나 도네츠크주 현재 지명은 Sviatohorivka)에서 태어나 하르키우 의학 연구소를 졸업하고 10년 동안 군의관으로 복무하였다. 1946년 하르키우에 있는 제2 메치니코프 역학 및 미생물학 연구소의 연구원, 소장을 거쳐 1958년 소련 보건부 차관이 되었다. 그는 바이러스학, 유전학, 역학 분야에서 소련 최고의 권위자 중 한 명이었다. 1958년 11차 세계보건총회에서 동서 냉전이 한창이었음에도 동서가 하나가 되어 천연두 바이러스와의 전쟁에 참여할 것을 촉구하였다. “세계가 노력하면 10년 안에 천연두를 몰아낼 수 있다.”는 그의 주장은 처음에는 회의적이었다. 총회에서 겨우 두 표 차이로 승인이 되었다. 1959년에 세계보건총회는 그가 제안한 의제를 채택하였고, 소련은 보유하고 있던 2500만 바이알의 천연두 백신을 무상 제공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세계 각처에 만연한 천연두와 전쟁을 하기 위해 인간이 갖고 있는 무기는 턱없이 부족했다. 백신도, 백신을 보관하고 생산할 시설도 부족했지만, 남미 아마존의 열대림, 안데스 고원, 아프리카 오지 마을 등 최전선에서 목숨을 걸고 싸울 인적자원은 더욱 부족하였다. 도무지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상태에서 전환점이 된 것은 1965년 미국 대통령 린든 존슨이 전폭적인 지지 성명이었다.

천연두의 세계적 근절을 위해 존슨 대통령은 다음 세 가지를 천명하였다.

첫째, 세계보건기구의 10년 내 완료를 목표로 한 천연두 근절 프로그램을 전적으로 지지한다. 둘째, WHO의 지역 기관인 범미보건기구에 기술 인력과 기타 필요한 자원을 지원하여 라틴 아메리카에서 천연두와의 전쟁을 강화한다. 셋째, 근절 프로그램을 위한 백신 요건을 충족할 수 있도록 개발도상국에 실험실 시설을 설립하도록 지원한다. 미 대통령의 선언으로 마침내 전 지구적 규모의 천연두 박멸 프로젝트가 가동되었다.

윌리엄 포에지는 끝없이 펼쳐진 옥수수 밭으로 유명한 미국 최대 곡창지대 아이오와에서 루터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루터교 선교사로 기니에서 봉사하던 삼촌을 존경하여 어릴 적부터 선교와 의료봉사의 꿈을 갖게 되었다. 워싱턴 의대를 졸업하고, 의료선교사가 되기 위해 하버드에서 공중보건학 석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나이지리아의 야헤로 의료선교를 떠났다. 그는 전기도 마실 물도 없는 야헤 마을에서 진흙으로 지어진 오두막에서 살았다.

어느 날 포에지는 고립된 마을에 천연두 환자가 있다는 무전을 받았다. 그러나 갖고 있던 백신이 충분하지 않았다. 그는 그 지역의 지도를 펼쳤다. 그리고 햄 라디오 네트워크를 이용해 다른 의료 선교사들과 연락을 취했다. 마을에서 발생한 천연두의 잠복기가 14일 이기 때문에 환자와 그의 가족들 그리고 접촉자들의 위치를 파악하여 격리를 하였다. 그리고 부족한 백신을 그들에게 우선적으로 접종하였다.

천연두를 막기 위해 인구의 80~100%에게 예방 접종을 해야 하지만, 포에지는 50% 미만으로 질병을 막을 수 있었다. “감시”와 “봉쇄” 그리고 접촉자에 대한 우선적인 접종(ring vaccination) 때문이었다.

포에지의 백신 전략은 지금으로 보아서는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지만, 당시에는 최초로 시도되는 것이었다. 그의 전략은 곧 세계로 퍼져서 천연두와의 전쟁에서 핵심적 전략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아프리카의 대부분에서 이 전략을 도입하여 인구 70% 미만 접종으로 천연두가 사라졌다.

나이지리아에서 내전이 발발하여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하자 포에지는 미국으로 돌아가 CDC(질병통제센터)의 아프리카 천연두 박멸 책임자가 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 인도의 천연두 문제 해결 요청을 받게 되었는데, 인도는 불가능하다는 다른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인도로 떠났다. 포에지가 인도의 비하르 주에 도착했을 때 그곳은 일주일에 천연두가 1만 1천 건이 발생했고 4천 명이 사망하여 악화 일로에 있었다. 그는 자신의 백신 전략을 강력하게 밀고 나가 한 달 만에 발생률을 현저히 떨어트렸다. 인도는 1975년 유라시아 대륙국가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천연두 청정 국가가 되었다.

1972년 남미와 인도네시아, 1973년 아프가니스탄, 1974년 파키스탄, 1975년 인도에서 천연두가 박멸되었다. 아프리카의 서부와 중부의 국가들은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계획이 하나둘씩 달성되자 많은 나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천연두가 박멸되었다. 박멸되지 않고 남은 지역은 아프리카의 뿔이라고 불리는 동부지역 에티오피아와 소말리아뿐이었다. 이 지역은 사막, 밀림, 고원지대가 뒤섞인 복잡한 지형인 데다가 정치와 치안이 불안하여 게릴라들과 무장한 강도들이 출몰하던 곳이었다. 미국뿐 아니라 일본의 젊은이들도 이 지역에서 의료 봉사를 했는데 나가사키 대학 열대의학연구소의 키무라 에이사쿠는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아프리카의 뿔이라 불리는 에티오피아, 소말리아 지역
아프리카의 뿔이라 불리는 에티오피아, 소말리아 지역

“에티오피아는 세계 천연두 환자의 절반 이상이 발생한 심각한 지역이다. 이곳 지형은 2천 미터에서 3천 미터 높이의 테이블 형 고원지대 많은데 사람들이 말라리아 등 열대병을 피해 이곳에 마을을 만들어 살았다. 그랜드캐니언 같은 장대한 절벽을 오르내려야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우리의 임무는 천연두 감염원을 추적하는 것이어서 여행 예정이란 게 없다. 현지로 가서 정보를 수집하면서 다음날 행동을 정한다.(중략) 나귀에 짐을 싣고 가이드, 통역을 따라 출발했다. 우박이 섞인 소나기와 번개는 정말 지독했다. 음식은 전부 현지 조달이다. 먹을 것을 도무지 구하지 못할 때가 있어 피로와 배고픔에 찌든 몸으로 산길을 터벅터벅 걸어간다.(중략) 6월 18일 라모라라는 마을에 도착했는데 천연두 환자를 다수 발견했다. 한 젊은 여성은 한쪽 눈을 잃었는데 다른 눈도 위험했다. 가족을 조사해 감염원을 알아냈다.(중략)” 「열대의학연구소 동문회지 1977년」

이들의 목숨을 건 헌신 덕에 마침내 에티오피아, 소말리에서 천연두가 박멸되었다. 지구상 마지막으로 자연 발생한 천연두 환자는 소말리아 남성이었는데 발병 날짜는 1977년 10월 26일이었다.

2년 동안의 감시기간을 거치면서 과학자들은 천연두가 박멸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1980년 5월 8일 제33회 세계보건총회(WHA)에서 천연두가 박멸되었음을 선언했다. 2017년 유네스코는 세계보건기구의 천연두 퇴치 프로그램에 관한 기록물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였다.

칼럼니스트 소개

오순영 원장

가정의학과 전문의 

파이넨스투데이
content@www.newsbel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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