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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기계였던 독일군, ‘죽이고, 태우,고 뺏으라’는 일본과 똑같다

프레시안 조회수  

“먼 남의 나라 이야기 그만 하고, 731부대와 ‘위안부’ 성노예를 비롯한 일본군의 전쟁범죄를 다뤄야 하는 것 아니냐.” 이즈음 나치 독일의 전쟁범죄 관련 연재 글들을 보고 독자 한 분이 이런 메일을 보내주셨다. 연재 글 아래 댓글 창에서도 이와 비슷한 제안들이 있었다. 아마도 이 독자분들은 앞서 실린 글들을 놓치신 듯하다. 731부대를 비롯한 일본의 전쟁범죄에 대해선 이미 본 연재 전반부에서 50회쯤 다루었다.

돌이켜보면, 731부대의 잔학성은 나치 독일의 아인자츠그루펜(Einsatzgruppen, 특수기동대, 이동학살부대)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 이시이 시로(石井四郎)를 비롯한 731부대원들은 세균무기를 개발한답시고 조선인 독립투사들마저 ‘마루타’ 실험용으로 삼았던 지옥의 악귀들이었다. 문제는 일본 패전 뒤 이들이 전쟁범죄자로 벌을 받기는커녕 노후를 편안히 보냈다는 점이다. ‘피 묻은’ 세균전 정보를 미 세균부대에 고스란히 넘겨주고 면죄부를 받은 ‘더러운 거래’ 덕이었다(연재 60~63 참조).

얘기가 나온 김에 독자분들의 양해를 구하며 책을 하나 소개한다. 위안부’ 성노예, 강제동원, 731부대, 난징학살 등을 다룬 「프레시안」 연재 글들을 큰 틀에서 다시 가다듬어 「일본의 전쟁범죄」를 냈다. 책 분량이 거의 670쪽으로 좀 두꺼운 편이다. 2024년 세월호 침몰 10주년을 맞아 「세월호, 다시 쓴 그날의 기록」을 내는 등 공익 재단법인의 성격을 지닌 ‘진실의 힘’ 출판팀에서 펴냈다. 관심 있는 독자분들의 열독을 바란다.(바로가기 ☞ 클릭)

만슈타인 장군, “유대인에게 혹독한 죗값 받아내야”

“유대 볼셰비즘 체제는 발본색원해야 한다. 두 번 다시 유럽인의 생활공간에 들어오지 못하게 해야 한다. 따라서 독일군의 임무는 이 체제를 유지하는 군사적 수단을 파괴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다. 독일군은 민족 이념의 수호자로서 모든 만행의 원수를 갚아야 한다. 아군은 볼셰비즘 테러의 정신적 지주인 유대인에게 혹독한 죗값을 받아내야 한다는 데 공감해야 한다”(이안 커쇼, 「히틀러Ⅱ 몰락 1936-1945」, 교양인, 2010, 573쪽).

위의 글은 에리히 폰 만슈타인(육군원수)가 1941년 11월20일 독일정규군(국방군) 남부집단군에 속한 11군 최고사령관을 맡으면서 동부전선의 병사들에게 지시했던 내용이다. 훗날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서 이에 대해 검찰이 묻자,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다”고 모르쇠로 일관했다. 징역 19년을 선고받았던 만슈타인은 동서냉전의 바람을 타고 4년의 짧은 복역 뒤 풀려났다. 그 뒤 회고록 「잃어버린 승리」(Verlorene Siege, 1955)을 펴내 자신의 전공(戰功)을 부풀리면서, “독일국방군은 전쟁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이른바 ‘흠 없는 방패로서의 깨끗한 독일군 신화’를 퍼트린 장본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영국 역사가 이언 커쇼에 따르면, 만슈타인은 “볼셰비키 테러를 배후에서 조종하는 유대인들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신념을 지닌 골수 나치였다. 그는 부하 장병들에게 “이번 전쟁의 책임은 소련 체제를 장악한 유대인에 있다”면서 “유대인은 붉은 군대 및 붉은 군대 수뇌부 잔당과 후방의 적 사이에서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1941년 6월22일 바르바로사 작전(Unternehmen Barbarossa)에 따라 소련 영토를 침공하면서 히틀러와 그의 장군들은 ‘유대인과 러시아인’을 결합한 기묘한 이데올로기 전쟁을 폈다. 이른바 ‘유대 볼셰비즘’과의 투쟁을 통한 인종말살전쟁이다. 히틀러의 시각에서는, 세계를 금융으로 지배하려는 ‘음흉하고 교활한 유대인’과 ‘더럽고 위험한 공산주의자 볼셰비키’가 손을 잡고 독일 아리안민족의 생존을 위협하는 존재다. 따라서 히틀러는 예방전쟁의 차원에서 유대인과 러시아인을 궤멸시켜야 했다.

그런 현실인식의 바탕에는 인종주의적 편견이 깔려 있었다. 선전장관 요제프 괴벨스를 비롯한 베를린의 정치인들은 독일인들이 아리안 혈통을 지닌 우수한 민족인 만큼 유대인이나 러시아인 같은 열등 민족을 다스릴 자격이 있는 ‘지배 민족'(Herrenvolk)이라 주장을 되풀이 했다. 독일군 지휘부도 병사들에게 ‘지배 민족’의 구성원인 ‘우등 인간'(Herrenmensch)이란 자부심을 불어넣었다. 그럼으로써 살인에 대한 죄책감 없이 유대인과 적군 포로들을 무자비하게 제거하길 바랐다.

▲ 동부전선에서 죽은 독일군 소지품에서 발견된 바비 야르 집단학살 사진. 1941년 9월말 바비 야르 계곡에서 유대인 3만 명이 집단 학살됐다. ⓒ위키미디어
▲ 동부전선에서 죽은 독일군 소지품에서 발견된 바비 야르 집단학살 사진. 1941년 9월말 바비 야르 계곡에서 유대인 3만 명이 집단 학살됐다. ⓒ위키미디어

젊은 병사를 학살기계로 바꾼 ‘히틀러의 장군들’

‘히틀러의 장군들’은 독일국방군 최고사령부가 ‘병사들이 민간인을 죽여도 군사법원에서 다루지 않는다’고 결정했고, 이는 다름 아닌 히틀러의 뜻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던 터였다(연재 93, 94 참조). 소련군과 민간인에 대해 독일국방군 장병들이 저지르게 될 범죄에 면죄부를 준다는 최고사령부의 결정은 전쟁범죄를 부추기는 데 한몫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독일 역사가 볼프람 베테(프라이부르크대, 전쟁사)는 독일국방군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전쟁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이른바 ‘독일군 무오류 신화’를 비판적으로 살펴본 연구자다. 그의 글에서 남동유럽에 투입된 6군 사령관 발터 폰 라이헤나우(육군원수)가 (만슈타인과 마찬가지로) 병사들에게 전쟁범죄를 부추긴 기록들을 보자.

“우리 장병은 전쟁의 규칙에 따른 전투에만 전념할 것이 아니라 인종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자로서, 우리에게 가해진 야만적 행위를 가차 없이 응징해야 할 것이다. 우리 장병은 유대계 하등인간이 가혹하지만 정당한 죗값을 치러야 할 필요성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 징벌은 독일 전선의 배후에 있는 폭동을, 경험상 언제나 유대인에 의해 촉발되는 폭동을 제지할 목적에 도움이 된다”(볼프람 베테, 「독일국방군」, 미지북스, 2011, 136쪽).

독일군 지휘부가 거듭 유대인에 대한 멸시와 더불어 ‘혹독한 죗값을 받아내야 한다’는 식으로 집단살해를 부추긴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베테의 분석에 따르면, 전쟁터의 독일 젊은이들이 유대인을 비롯한 적대세력에게 자칫 자비나 관용을 베풀지 못하도록 막고, 아울러 사람을 죽이는 데 따르는 죄책감을 품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젊은 병사들이 ‘우리와 다른 타자’를 열등인간으로 낮춰본다면, 망설임 없는 학살기계가 되기 십상이다.

독일국방군이 뒤 받쳐준 바비 야르 학살

독일국방군의 일부 고위 장성들은 유대인 절멸에 대한 히틀러와 나치당의 확고한 의지를 잘 알고 있으면서도, 전쟁 초기만 해도 유대인 학살에 어느 정도 거리를 두려 했다. 이른바 ‘명예’를 중시하는 군의 오랜 전통이 깨지고, 장병들의 군율이 흐트러져 전쟁범죄 집단으로 손가락질 받는 상황을 피하려 했다. 하지만 전쟁의 광풍과 혼란 속에서 독일국방군은 곧바로 전쟁범죄의 공범집단이 됐다.

그 대표적인 보기가 바비 야르(Babi Yar) 집단학살이다. 소련 침공 3개월 뒤인 1941년 9월19일, 발터 폰 라이헤나우 원수가 이끄는 독일국방군 제6군 소속 29군단이 우크라이나 중심도시 키예프(키이우)를 점령했다. 전쟁 전 그곳엔 유대인 16만 명이 살고 있었다. 후퇴하는 소련군을 따라 피란을 간 10만 명을 뺀 나머지 6만의 유대인이 독일인의 손아귀에 잡혔다. 피난을 떠나기 어려운 여성, 어린이, 노약자들이 많았다.

이들 유대인 절멸작전은 (지난 주에 살펴봤던) A,B,C,D 4개의 아인자츠그루펜(Einsatzgruppen, 이동학살부대) 가운데 하나인 아인자츠그루펜 C부대에 속한 4a팀이 맡았다. 학살 장소는 키이우에서 10km쯤 떨어진 바비 야르 계곡이었다. 유대인들을 집합시키는 역할은 독일국방군 몫이었다. 한국의 홀로코스트 연구자 최호근(고려대, 독일근현대사)의 글을 보자.

[1941년 9월28일, 제637 선전중대가 제6군 인쇄창에서 제작한 벽보를 키예프 시내 곳곳에 붙였다. 이 벽보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었다. “키예프와 그 인근에 거주하고 있는 모든 유대인은 29일 오전 8시까지 멜리니코바 가(街)와 도크투로프스카 가가 만나는 지점에 집결해야 한다. 신분증, 돈, 귀중품, 의복 등을 반드시 지참하라. 이 명령을 따르지 않고 다른 곳에서 발견되는 유대인은 모두 사살될 것이다. 유대인이 떠난 거주지를 뒤져 도둑질하려는 시민도 모두 사살될 것이다] (최호근, ‘나치 독일 정규군의 유대인 학살과 과거사 극복’,『제노사이드연구』제2호, 2007).

독일군은 모든 유대인이 노동수용소로 이송될 것이라는 헛소문을 퍼뜨렸다. 집결장소가 역 에 가까웠기에 의심이 많은 유대인들조차 그 소문을 쉽게 믿었다. 운명의 그날 아침 모인 유대인은 3만 명을 넘었다. 유대인들은 수백 명씩 나뉘어 바비 야르 계곡 근처에 있는 유대인 공동묘지로 이동했다. 도망치지 못하도록 감시와 이송은 독일 정규군이 맡았고, 우크라이나 보조경찰의 도움을 받았다.

계곡 입구에서 유대인들은 남녀 가릴 것 없이 모든 옷을 벗어야 했다. 돈과 보석을 비롯한 소지품도 내놓았다. 그런 다음 수십 명 씩 나뉘어 계곡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곳엔 독일군 공병대가 미리 파놓은 거대한 구덩이(길이 150미터, 넓이 30미터, 깊이 15미터)가 있었다. 구덩이 아래로 떠밀려간 유대인들은 앞서 총에 맞아 죽은 사람들 위에 엎드렸고, 아인자츠그루펜 대원들이 3개조로 나뉘어 잇달아 총을 쏴댔다.

이틀에 걸친 학살이 끝난 뒤 아인자츠그루펜이 상부에 올린 보고에 따르면, 바비 야르에서 죽은 유대인은 모두 3만 3,771명이었다. 마무리는 독일국방군 소속 공병대가 맡았다. 공병들은 구덩이 바깥의 흙벽을 무너트렸다. 소련군 포로들이 무덤을 메우는 고된 작업에 동원됐다. 대량학살이 있기 전까지만 해도 아름다운 풍광을 지녔던 계곡엔 볼썽사나운 거대한 무덤이 생겨났다. 최호근 교수는 바비 야르 학살에서 독일정규군(국방군)이 맡았던 역할을 이렇게 요약한다(다른 지역에서의 학살도 아래와 거의 같은 방식이라 보면 틀림없다).

[첫째, 정규군은 키예프의 치안유지와 작전성공을 위해 유대인 문제에 대한 ‘근본적’ 해결책의 마련을 친위대 및 살인특무부(아인자츠그루펜)에게 촉구함으로써, 학살이라는 결과를 피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둘째, 학살전담부인 살인특무부는 독자적인 병참 수행 기능이 없었기 때문에, 정규군이 이 부대에 대한 병참지원 업무를 전적으로 담당했다. 셋째, 유대인 집결에서부터 학살에 이르기까지 정규군의 통제관리 협조가 없었다면, 바비야르에서의 학살은 효율적으로 집행될 수 없었을 것이다. 넷째, 공병대 인원과 장비 투입을 통해 정규군은 학살이 ‘깔끔하게’ 마무리될 수 있도록 협조했다](최호근, 위 논문).

소련군 포로 학살이 독일국방군(육군)과 친위대의 협력 작업으로 이뤄졌듯이, 유대인 학살도 마찬가지로 둘 사이의 합작으로 벌어졌다. 보통의 경우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제거 대상’이 뽑혔다. 독일 역사학자 볼프람 베테의 글을 보자.

[먼저 군 사령관은 (한 지역을 점령한 뒤) 명부 작성을 핑계로 그 지역 유대인들을 모이도록 한다. 이런 명령은 보안경찰과 제국보안대 부대들이 유대인을 가려내어 체포하는 데 좋은 조건을 만들어준다. 자신의 운명을 미리 알아채고 산으로 도주하거나 지하로 잠적하지 않은 유대인의 운명은 곧 죽음이었다. 잔혹성과 야만성을 극단으로 몰아갔던 일종말살정책을 벌이면서 나치 친위대와 국방군은 형식상의 구분을 지킬 필요가 없는 인위적인 것으로 보게 되었다](볼프람 베테, 170-171쪽).

▲ 1942년 뙤약볕 아래서 마실 물도 없이 방치된 소련군 포로들. 독일군에 붙잡힌 570만 명의 포로 가운데 230만 명이 죽었고, 대부분이 굶어 죽었다. ⓒ위키미디어
▲ 1942년 뙤약볕 아래서 마실 물도 없이 방치된 소련군 포로들. 독일군에 붙잡힌 570만 명의 포로 가운데 230만 명이 죽었고, 대부분이 굶어 죽었다. ⓒ위키미디어

소련군 전쟁포로 굶겨 죽도록 방치

독일국방군이 저지른 전쟁범죄 가운데 가장 큰 것이 소련군 포로 학대다. 나치 독일은 (영국군 포로나 프랑스군 포로들과는 달리) 소련군 포로들을 ‘열등 인간집단’으로 업신여기면서 일부러 식량 배급을 끊어 굶어 죽도록 내버려두었다. 독일군에 포로가 된 소련군 570만 명 가운데 40% 가량(약 230만 명)이 포로로 붙잡혀 있는 동안 죽었다(라울 힐베르크, 「홀로코스트, 유럽유대인의 파괴 1」, 개마고원, 2008, 467쪽 참조).

소련의 전쟁 희생자는 독일군 침공(1941년 6월22일) 뒤 1년 사이에 집중됐다. 1941년 말까지 소련군 포로는 335만 명이었는데, 이들 가운데 사망자의 대부분은 굶주림이었다(추위와 전염병은 굶주림에 견주면 무시할만한 요인이다). 포로에게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음식 배급을 의도적으로 끊어 끝내 죽도록 만들었다면, 그것은 곧 전쟁범죄다. 독일군으로선 총알을 아끼고 사살조가 받게 될 스트레스도 피할 수 있다고 여겼을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과의 전쟁으로 비롯된 소련인 사망자 규모는 엄청나다. 600만 명으로 추산되는 유대인 홀로코스트 희생자 규모를 훨씬 웃돈다. 영국 역사학자 리처드 오버리에 따르면, 소련 민간인 사망자는 약 1,600만 명에서 1,700만 명으로 추산되고, 군 전사자는 866만 8,400명에 이른다. 또한 전투 중에 입은 부상, 질병, 동상, 정신쇠약 등 여러 의학적 전상자는 1,800만 명 쯤이다(리처드 오버리, 「독재자들」, 2008, 730쪽, 733쪽 참조).

나치 친위대와 국방군의 협력

또한 독일군은 전쟁규범을 어기고 포로들을 사살했다. 소련군을 포로들을 잡으면, 가장 먼저 군 정치위원과 보안요원, 그리고 유대인 출신 장병을 처형했다. 이는 독일국방군 최고사령부가 원칙적으로 그렇게 하도록 지시한 임무였다. 따라서 독일군은 살인에 대해선 면죄부를 쥔 상태였다.

[독일국방군 최고사령부가 1941년 6월6일에 공포한 ‘정치위원들의 처리에 관한 지침’은 전투 중에 잡히거나 저항하다 잡힌 정치위원들은 ‘원칙적으로 무기를 사용하여 죽여야 한다’고 명령했다. 다만 육군 최고사령관 발터 폰 브라우히치는 정치위원들을 죽일 때 가능하면 눈에 띄지 않게 죽여야 한다고 이 명령에 덧붙였다](리처드 오버리, 「독재자들」, 교양인, 2008, 717쪽).

소련 침공 1개월이 채 지나지 않은 1941년 7월16일, 친위대(SS) 사령관 하인리히 힘러의 심복인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 국가보안본부(RSHA) 본부장이 독일군 총참모부 총무국의 라이네케 장군을 만났다. 둘은 소련군 정치위원과 더불어 유대인을 이른바 ‘유대 볼셰비즘’의 핵심으로 보고 이들을 제거함으로써 ‘스스로를 해방시키기로’ 합의했다. 독일국방군이 지키는 포로수용소에 포로가 들어오면, 친위대 보안국 요원들이 낀 심사팀이 ‘유대 볼셰비스트’들을 골라내 친위대 특공대로 하여금 죽이도록 했다. 홀로코스트 연구자 라울 힐베르크(전 버몬트대 교수, 1926-2007)의 글을 보자.

[군대(독일국방군)는 대체로 협조적이었다. 이를테면 보리스폴 포로수용소장은 친위대 특공대(아인자츠그르펜) 4a에게 심사팀을 수용소로 파견해달라고 요청했다. 친위대원은 두 번의 심사를 거쳐 1,109명의 유대인 포로를 가려내 사살했다. 희생자 중에는 수용소 의사가 넘겨준 부상자 78명이 포함돼 있었다. 다른 곳도 (처리 상황은) 비슷했다](라울 힐베르크, 「홀로코스트, 유럽유대인의 파괴 1」, 개마고원, 2008, 469쪽).

희생자 가운데는 소련군 정치위원과 ‘광신적’ 공산주의자, 지식인도 들어 있었다. 1941년 12월21일 베를린에서 열린 한 회의에서 나온 집계에 따르면, 그때까지 소련군 포로(유대인과 비유대인 포함) 2만 2,000명이 선별되어 그 가운데 1만 6,000명쯤이 사살됐다(라울 힐베르크, 473쪽). 그 뒤로 얼마나 많은 포로들이 살해됐는지는 알 수 없다. 1945년 패망을 앞둔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막판에 전쟁범죄 증거가 될 자료들을 폐기․소각했던 것과 마찬가지다.

나치의 또다른 전범조직, 무장친위대

독일군 전쟁범죄의 주역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무장친위대(Waffen-Schutzstaffel)다. 친위대(SS)는 1925년 나치당의 준군사조직으로 만들어졌고 하인리히 힘러(계급은 원수)가1929년부터 사령관을 맡았다. 힘러는 그 자신과 친위대의 세력을 키울 요량으로 1933년 일반친위대(Algemeine SS)에 더해 무장친위대를 만들었다. 전쟁 전에 작은 규모였지만 전쟁이 격화되면서 38개 사단에 90만 병력 규모를 지닌, 그야말로 ‘나치 독일의 정예부대’로 몸집이 커졌다.

하지만 힘러가 가진 것은 군사행정적인 의미의 군정권뿐이었다. 무장친위대의 군사작전을 지휘하는 권한(군령권)은 독일국방군 최고사령부(OKW)에 있었다. 이런 이중구조는 히틀러가 만든 것이다. 무장친위대가 OKW의 전투 지휘를 받게 함으로써 (친위대 세력이 커지는 것을 경계하는) 독일국방군의 반발을 누르려는 히틀러 나름의 교활한 결정으로 알려진다.

여러 기록들은 무장친위대가 민간인 살해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을 보여준다. 마구잡이 학살 범죄를 저질렀던 동유럽(폴란드와 러시아)에서와는 달리 서유럽 점령지의 독일군은 되도록 가혹행위를 삼갔다. 하지만 노르망디 상륙작전(1944년 6월6일)을 막는 데 실패하고 독일 본토로 물러나야 하는 상황에서 민간인 살해가 크게 늘어났다.

사례 하나를 꼽으면 이렇다. 1944년 6월 10일 ‘다스 라이히'(Das Reich) 사단으로 알려진제2SS기갑사단은 프랑스 오라두르-쉬르-글란 마을에서 “레지스탕스 활동을 막는다”는 구실 아래 주민 642명을 학살했다. 희생자 가운데는 여성 247명과 어린이 205명이 들어 있었다. 그해 6월 제2SS기갑사단은 모두 4,000명의 민간인을 살해했고, 다른 독일군 부대에서도 3,900명의 민간인을 죽였다(리처드 오버리, 「피와 폐허」, 책과함께, 2024, 1239쪽 참조).

▲ 리투아니아에서 아인자츠그루펜(이동학살부대)이 유대인들을 처형하는 모습. 독일국방군은 아인자츠그루펜의 병참을 대고 학살을 거든 전쟁범죄의 공범자였다. ⓒ위키미디어
▲ 리투아니아에서 아인자츠그루펜(이동학살부대)이 유대인들을 처형하는 모습. 독일국방군은 아인자츠그루펜의 병참을 대고 학살을 거든 전쟁범죄의 공범자였다. ⓒ위키미디어

“독일군이 메뚜기처럼 덮쳤다”

바로 위 민간인 희생자 통계를 옮긴 영국 역사학자 리처드 오버리(엑서터대 명예교수)는 20세기 전쟁사 분야에서 이름이 널리 알려진 연구자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을 제국주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19세기 중반부터 거의 한 세기에 걸친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적 팽창 경쟁에서 비롯된 갈등이 제1차 세계대전을 맞았고, 그에 이어 1930년대와 1940년대 초 독일․이탈리아․일본의 제국주의적 영토 야망이 우리 인류사에서 가장 참혹한 전쟁인 제2차 세계대전을 낳았다고 본다.

오버리의 최근작(Bood and Ruins, 2021)에 따르면, 나치 독일이 1939년 9월1일 폴란드를 침공해 항복을 받아내자 말자, 독일국방군 군인들은 저마다 폴란드인의 재산을 빼앗아 가져갔다. 관련 대목을 보자.

[폴란드 의사 지그문트 클루코프스카는 매일 일어나는 약탈을 일기에 기록했다. “상점들을 온통 파괴하고 약탈한다.” “독일군은 특히 좋은 음식, 술, 연초, 담배, 은그룻을 찾는다.” “오늘 독일군 장료들마저 유대인 가택을 수색하기 시작해 현금과 보석류를 모두 가져갔다.” 그는 독일 군인들이 가톨릭교회들에서 보물을 훔쳐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헌병대는 뒷짐을 진 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리처드 오버리, 「피와 폐허」, 책과함께, 2024, 1235쪽).

독일군이 발칸 반도를 점령했을 때도 폴란드에서와 마찬가지로 군인들의 약탈이 일상적으로 되풀이됐다.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의 문명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그리스 도시들이 특히 약탈의 목표가 됐다. 오버리의 글을 더 보자.

[그리스 도시들에서는 독일군 장교나 사병이나 박물관 보물부터 (골동품처럼 보이는) 가재도구까지 무엇이든 싹 쓸어갔다. 아테네에서 충격을 받은 한 구경꾼은 ‘독일군이 도둑이 된’ 이유가 무엇일지 골똘히 생각했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모든 주택을 탈탈 털었다. 그 지역 빈민가에서조차 이불과 담요…심지어 문의 금속제 손잡이까지 몽땅 빼앗았다”](리처드 오버리, 1235-1236쪽).

서기 410년 로마제국의 심장부로 쳐들어와 약탈극을 벌인 고트족을 떠올릴 만한 모습이다. 윗글 속의 한 구경꾼은 ‘독일군이 왜 그토록 약탈을 서슴지 않는 이유’를 궁금해 했다. 독일군의 약탈행위엔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 독일국방군 사령부는 점령지에서 식량 등 전쟁 수행에 필요한 기본 물자들을 최대한 확보해 자급하도록 했다. 그런 까닭에 독일군은 가는 곳마다 쓸 만한 물건이면 탈탈 털어갔다. 오죽하면 현지 사람들로부터 “독일군은 마치 메뚜기처럼 주민들을 덮쳤다”는 비난마저 들었을까(아시아․태평양전쟁 당시 중국과 동남아시아로 쳐들어간 일본군의 약탈상은 독일군보다 더 심했다).

일본군의 삼광(三光) 작전 닮은 야만

발칸반도의 세르비아를 점령한 독일국방군은 약탈뿐 아니라 학살에도 직접 뛰어들었다. 1941년 가을부터 그곳 독일군은 (오스트리아 출신인 프란츠 뵈메 장군의 지휘 아래) 수천 명의 유대인을 죽이고는 ‘인질을 죽였을 뿐’이라 했다. 뵈메 장군은 같은 오스트리아 출신인 히틀러에게 과잉 충성을 바쳤다. 그의 지휘 아래 독일군은 세르비아 점령 1년이 지나지 않아 그곳 유대인을 모두 ‘제거’했다. 나치 친위대의 도움을 받지 않은, 독자적인 작전을 통해서였다.

일부 독일군은 재산뿐 아니라 성폭행도 마다하지 않았다. 성폭행 하면 일본군을 따라가긴 어려울 듯하다. 중국 난징(1937년)을 비롯해 일본군이 전쟁이 벌이면서 민간인들을 상대로 끔찍한 전쟁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중국인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모두 죽이고, 모두 불태우고, 모두 빼앗으라”는 이른바 삼광(三光) 작전은 차마 글로 옮기지 못할 엄청난 피해를 안겼다.

침략자 독일군의 만행은 보복을 불렀다. 소련군 병사들은 전쟁 후반부에 후퇴하는 독일군을 쫓아가면서 소련 서부 일대를 지나갈 때 거의 모든 마을들이 불타고 폐허로 바뀐 것을 보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소련군 부대마다 있던 군 정치위원들이 병사들에게 “독일인을 짐승으로 여기고 중오하라”고 정훈교육을 할 필요조차 없었다. 마침내 1945년 독일 국경을 넘어서자, 소련군 병사들은 마구잡이 살인과 집단 강간, 약탈로 ‘보복’을 했다. 소련군 지휘관들도 부하들의 분노를 이해하기에 그저 바라만 봤다.

교과서에서 말하는 전쟁규범과는 거리가 먼 도덕적 일탈은 독일이나 소련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최종적 책임은 병사들에게 정치적․종족적 편견을 심어주고 극한 폭력을 부추긴 히틀러를 비롯한 전쟁 지도자들에게 묻게 되지만, 전쟁 자체가 우리 인간을 그토록 잔인하게 만드는 괴물 같은 속성을 지녔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다음 글에서는 ‘히틀러의 장군’들이 패전 뒤 전범재판에서 처벌을 제대로 받기나 했는지, 못 받았다면 왜 그랬는지, 패전 뒤 “독일국방군은 손을 더럽히지 않았다”는 ‘깨끗한 독일군 신화’가 사람들에게 널리 퍼진 까닭은 무엇인지 등을 독자들과 함께 살펴보려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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