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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고속철도 굴기’의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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習, 일자리창출·지역균형발전 등 위해 고속철 굴기 프로젝트 추진

中 고속철 총연장 4만 8000㎞에 달해 美 뉴욕~LA간 다섯번 왕복

여러 고속철 세계기록 외에 자체 기술력 확보, 경제적 효과 가시화

5년 간 선로 건설 등에 696조 원 퍼부어 재정 건전성 확보에 비상

중국과 라오스를 잇는 고속철도 건설 사업에 국내총생산(GDP)의 10%에 해당하는 15억 4000만 달러(약 2조 1000억원) 규모의 중국 자본을 끌어다 쓴 라오스는 422km의 건설 공사가 완공됐지만 낮은 이용률 등으로 채무상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에 따라 라오스의 대외부채 중 중국 부채가 차지하는 비중은 30%로 불어났다. 사진은 분냥 보라칫(왼쪽) 라오스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7년 5월16일 베이징 댜오위타이 국빈관에서 양자 회담을 앞두고 악수하고 있는 모습. ⓒ AFP/연합뉴스
중국과 라오스를 잇는 고속철도 건설 사업에 국내총생산(GDP)의 10%에 해당하는 15억 4000만 달러(약 2조 1000억원) 규모의 중국 자본을 끌어다 쓴 라오스는 422km의 건설 공사가 완공됐지만 낮은 이용률 등으로 채무상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에 따라 라오스의 대외부채 중 중국 부채가 차지하는 비중은 30%로 불어났다. 사진은 분냥 보라칫(왼쪽) 라오스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7년 5월16일 베이징 댜오위타이 국빈관에서 양자 회담을 앞두고 악수하고 있는 모습. ⓒ AFP/연합뉴스

중국 ‘고속철도 굴기’(崛起·우뚝 섬)의 그늘이 짙어지고 있다. 대규모 투자에 따른 일자리 창출, 지역균형 발전 등 국가 경제발전의 상징적인 의미는 시나브로 퇴색되고 있는 반면 수익성 제고를 통한 재정 건전성 확보가 시급한 화두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야심작인 고속철 굴기 프로젝트가 세계 최대 규모의 인프라(사회기반시설) 건설사업으로 성장했지만 막대한 재정적인 부담을 초래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지난 21일 보도했다. 중국의 고속철도 총연장은 현재 3만 마일(약 4만 8280㎞)에 달한다. 뉴욕에서 로스앤젤레스(LA)까지 미국 본토를 다섯번 이상 왕복해야 닿을 수 있는 거리다. WSJ는 중국의 계획 대로 오는 2035년까지 1만 50000 마일을 추가로 건설하려면 수천억 달러의 자금이 더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고속철 굴기 프로젝트는 시 주석이 “부자가 되려면 먼저 도로를 건설하라”며 비용에 관계없이 고속철 등 교통수단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정당화하겠다고 지시하면서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2012년부터 해마다 평균 3500㎞의 고속철도를 깔아 10년간 고속철 총연장이 9000㎞에서 4만㎞를 훌쩍 넘어선 것이다. 이로써 중국은 ▲고속철 최다 건설 ▲고속열차 최다 제조 ▲가장 빠른 운영 시속(350㎞) 열차 등 여러가지 세계기록을 갈아치웠다.

중국은 시 주석의 집권 2기가 시작된 2017년 ‘푸싱(復興)호‘ 고속철을 출범시켰다. 푸싱호는 고속철 굴기의 집합물인 동시에 중국 기술혁신의 상징이기도 하다. 중국은 일본과 유럽의 기술을 도입해 자체 기술력을 확보했으며 세계에서 가장 빠른 시속 450㎞ 고속열차의 시험을 연내 끝내고 내년부터 운행을 시작하는 등 기술적 성과를 거두고 있다.

중국 독자 기술로 개발한 최고 시속 400㎞까지 달릴 수 있는 최신형 고속철
중국 독자 기술로 개발한 최고 시속 400㎞까지 달릴 수 있는 최신형 고속철

여기에다 대규모 일자리 창출과 도시화 촉진, 지역균형 발전 등 경제적 효과도 나타나고 있다. 총길이 1838㎞로 500억 달러(약 69조 6400억원)가 투입되는 중국 서남부 쓰촨(四川)성 청두와 시짱(西藏)자치구(티베트) 라싸(拉薩)를 잇는 철도노선 촨짱(川藏)철로 구간 건설현장의 고소득·엔지니어 일자리 창출이나, 총길이 1318㎞인 베이징(北京)~상하이(上海) 구간(1318㎞)은 중국에서 가장 붐비는 노선 중 하나로 연간 1억명 이상의 승객을 태워 연간 15억 달러 규모의 수익을 올리며 이 사업의 잠재력을 보여준다.

고속도로 교통 대비 탄소배출량을 80% 정도 줄이는 환경적 효과도 빼놓을 수 없다. 이 뿐만이 아니다. 고속철은 베이징 기준 수천㎞가 되는 거대 중국의 대부분 지역을 육로 ’1일 생활권‘으로 묶었다. 고속철 덕분에 물류와 인력의 대규모 이동이 원활해져 경제성장의 촉진제가 됐다는 얘기다.

이런 가운데 2022년 7월 1일 홍콩반환 25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시 주석의 행보가 행사 참석 이상으로 중국 안팎의 주목을 끈 것은 전용기를 놔두고 푸싱호를 이용한 것이다. 시 주석은 넓은 국토를 ’1일 생활권‘으로 묶은 자신의 공로를 과시라도 하듯 7월1일 홍콩 현지 기념식을 마친 뒤 8시간 걸리는 푸싱호를 타고 여봐란 듯이 베이징으로 복귀했다.

그러나 눈부신 성과의 이면에는 문제점도 심각하다. 지난 5년 동안 새로운 선로건설과 열차, 기차역에 5000억 달러 이상을 쏟아부었다. 중국 국가철로(國家鐵路)그룹은 지난해에만 노선 확장에 1080억 달러를 투입했지만 영업이익은 고작 4억 7000만 달러에 그쳤다. 국가철로그룹의 부채는 9월 말 현재 8600억 달러로 연간 무는 이자비용만 250억 달러에 달한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 소속 경제참고보 기자들이 최근 중국고속철그룹의 한 시공현장을 취재하다가 현장 관계자들로부터 폭행을 당했다. 사진은 폭행당한 기자의 손에서 피가 흐르는 모습. ⓒ 뉴시스
중국 관영 신화통신 소속 경제참고보 기자들이 최근 중국고속철그룹의 한 시공현장을 취재하다가 현장 관계자들로부터 폭행을 당했다. 사진은 폭행당한 기자의 손에서 피가 흐르는 모습. ⓒ 뉴시스

자오젠(趙堅) 베이징 교통대 교수는 “중국이 고속철 시스템의 재정적 위험을 외면하고 있다”며 “중국이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지역에 수천 마일의 고속철만 건설하는 것이 더 나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나머지 수천억 달러 비용으로 화물을 처리할 수 있는 전통적인 철도와 첨단 반도체 등과 같은 분야에 집중 투자했으면 경제성장에 더 많은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승차권 가격정책도 수익성 악화의 주요인이다. 국유 철도그룹이 빚더미 위에 올랐지만 고속철 요금은 세계 평균의 4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사회주의 특성상 서민 친화적 정책 탓에 요금인상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더욱이 재정이 취약한 지방정부들은 새로운 고속철 프로젝트 비용의 상당 부분을 부담해야 하는 만큼 재정난이 가중되고 있다. 중국에서 공공 서비스는 지방정부 보조금에 많이 의존하고 있는데, 현재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지방정부가 공공 서비스 요금을 낮출 여력이 없다.

이 때문에 고속철 요금이 지난 6월 이례적으로 대폭 인상됐다. 미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성수기 일등석과 이등석 승차권 가격은 20%가량 인상되고 국제선 여객기의 비즈니스석과 비슷한 VIP 좌석 가격은 최대 39%나 치솟았다. 고속철 요금이 인상됨에 따라 1069㎞인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에서 광둥(廣東)성 광저우(廣州)까지는 가는 고속철 요금은 78달러다.

ⓒ 자료: 월스트리트저널(WSJ)
ⓒ 자료: 월스트리트저널(WSJ)

가장 이용량이 많은 베이징~상하이 구간 이등석이 2020년말 8% 오르고 1년 뒤 10% 추가 인상된 데 비해 이번 인상 폭은 훨씬 컸다. 중국 소셜미디어(SNS)에서는 임금이 몇년째 제자리를 맴돌고 가장 인기 있는 투자수단인 부동산이 극심한 침체 현상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고속철 요금의 ‘대폭 인상’을 두고 부정적 반응이 빗발쳤다. 한 네티즌은 “임금 빼고 모든 것이 올랐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수요·공급 불균형도 심히 우려된다. 상하이~항저우(杭州)와 같은 대도시 구간은 수익을 내고 있지만, 농촌이나 내륙 지역의 노선들은 심각한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중국 고속철은 15년간 총연장 4만km가 훌쩍 넘는 거대 네트워크로 급성장했다. 2023년에만 고속철 역사수가 100개 이상 늘어나 전국적으로 2500개가 넘는다. 그렇지만 막대한 비용을 들여 건설했지만 하루 이용객이 100명 미만, 심한 경우 10명 도 안 되는 역들이 속출하고 있다.

쓰촨성 쯔궁(自貢)시 푸순(富順)현의 경우 인구 70만의 소도시에 43개의 고속철역이 있으나, 1일 평균 이용객은 1000명에도 못 미친다. 상황이 이런 만큼 ‘유령역’이라 고 불리는 이용객 없는 고속철 역사들이 곳곳에서 생겨나면서 중국 당국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중국 경영보(經營報)에 따르면 중국 내 고속철도역 중 시설은 완공됐으나 미사용 상태이거나 한때 문을 열었다가 폐쇄된 역이 최소 26곳에 이른다. 도시에서 멀고 입지가 좋지 않은 점, 역주변 상업시설이나 교통 인프라 부족, 계획단계 대비 여객 수요 저조 등이 주요인으로 꼽혔다.

ⓒ 자료: 세계은행(WB)
ⓒ 자료: 세계은행(WB)

‘유령역’이 늘어나고 있는 배경에는 지방정부가 무분별한 고속철 역사 유치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2013년 철도부 해체 이후 지방정부의 역사 건설방침에 대한 영향력이 커지면서 실제 수요는 제대로 예측하지 않은 채 정치적 성과과시나 도시 이미지 제고 등을 위해 역사 유치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광시(廣西)장족(壯族)자치구 구이린(桂林)시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다. 시내에서 떨어진 곳에 건설된 역사 중 하나는 접근성이 좋지 않은 탓에 하루 이용객이 200명 이하에 그쳐 개업 4년 만에 여객 업무를 중단했다. 세계적인 관광도시인 구이린에서조차 이 같은 문제가 발생했다는 점은 충격적이다. 지방정부가 부풀린 성장 예측에 기반해 무분별하게 역사를 유치한 결과 주민들의 철도에 대한 신뢰마저 손상될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지적이다.

특히 2025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재집권은 중국 고속철 사업의 향방에 새로운 변수로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보호무역주의 강화와 미·중 갈등 심화로 수출이 위축될 경우 중국은 내수 부양을 위해 고속철 건설을 더욱 가속화할 공산이 큰 까닭이다. 그러나 이는 재정 부담을 더욱 가중시킬 수 있는 만큼 경기부양과 재정 건전성 사이에서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

글/ 김규환 국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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