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아파트 단지 안에서 브런치를 먹으면 호캉스(호텔 바캉스)를 즐기는 기분이 나요.”
서울 서초 반포동 래미안퍼스티지에 사는 변호사 김모(48)씨는 주말마다 아파트에서 파는 브런치를 먹는다. 이 아파트는 지난 2019년 식사를 제공하기 시작했다가 몇달 만에 중단했었다. 그러다 지난 7월부터 연회장을 식당으로 개조하고 주말 아침에 브런치를 다시 팔기 시작했다. 50명 안팎이 앉을 수 있는 식당에는 하루에 약 60명이 온다고 한다. 가격은 4000~7000원이다.
◇ “집값과 직결… 옆 단지 식사 제공 의식할 수밖에”
래미안퍼스티지를 비롯해 서울 강남권 고급 아파트에서 최근 식사 제공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 아파트 최초로 식사를 제공한 아파트는 2017년 서울 성수동의 트리마제 아파트로 알려졌다. 그 이후에 지어진 강남권 재건축 단지들은 대부분 식사를 제공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조리시설을 포함한 식당 시설을 설계했다.
강남구 개포동에서는 2018년부터 지금까지 모두 7개 단지가 재건축됐는데, 그중 5개 단지가 식사를 제공하고 있으며 1개 단지는 식사 제공을 준비하고 있다. 가격은 8000원에서 1만원 선이다.
지난 2021년 준공된 디에이치자이개포아파트도 점심·저녁 식사를 8000원에 제공한다. 이 아파트에서 만난 직장인 이모(53)씨는 “맞벌이 부부인데 아파트 식사 제공 덕에 아내가 요리를 하지 않아도 되니까 좋아한다”고 말했다. 대학생 이모(23)씨는 “집에서 배달을 시키더라도 배달비가 발생하는데, 단지 안에서 밥을 먹으면 그 돈도 아낄 수 있다”며 “식비도 물가를 고려하면 저렴한 편”이라고 했다.
개포동보다 10여년 앞서 재건축 단지가 등장한 서초구 반포동은 한국의 대표적인 신흥 부촌으로 떠올랐다. 지난 2016년 준공된 반포동 아크로리버파크는 2018년부터 식사 제공을 시작해 현재 9500원에 아침 식사를 제공하고 있다. 아크로리버파크 단지 내 식당을 매일 이용한다는 김모(71)씨는 “나이 든 아내가 밥하는 수고를 덜어주고 싶었다”며 “집에서 밥을 하면 설거지도 해야 하는데, 그런 수고도 덜 수 있다”고 말했다. 주부 이모(41)씨는 “4살짜리 아들을 아침에 어린이집에 보내고 나면 점심은 단지 내에서 마음 편히 해결한다”고 말했다.
아크로리버파크 인근 래미안퍼스티지는 아크로리버파크의 등장 전까지 반포 ‘대장 단지’로 불렸다. 래미안퍼스티지가 식사 제공을 5년 만에 재개한 배경을 두고 주변 단지와 경쟁하는 심리가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아크로리버파크에서 조식을 제공하는 업체 릴리레브의 나봉주 운영대표는 “지난봄 래미안퍼스티지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이 아크로리버파크의 조식을 시식하고 운영 등에 대해 상담했다”면서 “래미안퍼스티지는 지어진 지 약간 시간이 지나 조리시설 등이 상대적으로 부족하지만 신축 단지들을 의식하고 도입한 듯하다”고 했다.
래미안퍼스티지에 거주하는 주부 강모(44)씨도 “주민들이 주변 아파트를 많이 신경 쓴다”면서 “아크로리버파크나 원베일리가 조식을 제공하기 시작하자 아파트 건의 게시판에 ‘우리 아파트도 해야 한다’는 글이 올라왔다”고 했다.
인근에서 공인중개사무소를 운영하는 조철호(59)씨는 “아파트에서 식사를 제공하는 것이 아파트 가격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치는 것이 맞는다”면서 “특히 은퇴한 70대 이상의 고령층 자산가들은 아파트가 고급 실버타운과 비슷하길 원해서 식사 제공 여부에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이어 “주변 단지들은 식사를 제공하는데, 특정 단지만 제공되지 않으면 지역 내 선호도가 떨어질 수 있다”며 “집값을 방어하기 위해서라도 식사 제공에 나설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라고 했다.
현재 전용면적 84㎡, 이른바 ‘국민 평형’ 기준으로 래미안퍼스티지의 가격은 40억원 안팎, 아크로리버파크의 가격은 40억~50억원, 원베일리의 가격은 50억원 이상이다.
◇ 송파구·강동구 아파트 대단지도 잇따라 식사 판매
강남에서도 초고가 단지들에 식사 제공 경쟁이 붙자 범(汎) 강남권 단지들도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지난 2018년 준공된 송파구 가락동의 헬리오시티는 9510가구에 이르는 대단지다. 이 아파트는 지난 7월부터 연회장을 식당으로 개조해 점심·저녁을 각 9000원·1만원에 제공하는 식사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식당 앞에서 만난 주부 박모(61)씨는 “식사 제공은 단지 입주 때부터 얘기가 나온 숙원이었다”며 “드디어 식사가 제공되니 강남구·서초구 아파트 부럽지가 않다”고 말했다. 이 단지에서 공인중개사무소를 운영하는 이모(52)씨는 “잠실의 엘리트(엘스·리센츠·트리지움) 단지에 비해 선호도가 다소 떨어진다는 평가가 있었지만, 식사 제공을 계기로 그 차이를 줄일 수 있지 않겠나”라고 했다.
지난 27일 입주를 시작한 1만2032가구 규모의 강동구 둔촌동 올림픽파크 포레온도 식사를 제공할 카페테리아 시설을 갖췄다. 이 아파트의 입주 예정자 이모(38)씨는 “단지 규모가 워낙 크니 강남에서만 누릴 수 있는 호사를 나도 누릴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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