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농업 이야기 305]
‘면역 프라이밍(immune priming, IP)’과 ‘세대간 전달’로 건강을 지키는 꿀벌
벌통은 수만 마리의 꿀벌이 먹이와 공간을 함께 나누며 살아가는 작은 도시와 같다. 꽃가루와 꿀이 쌓이고 꿀벌들이 끊임없이 드나드는 만큼 세균·곰팡이·바이러스와 꿀벌응애 같은 해로운 생물도 들어올 수 있다. 이에 맞서 꿀벌들은 경비와 청소, 벌통 보수, 유충 돌보기 등 역할을 나누어 벌무리를 지킨다. 꿀벌 한 마리의 몸에도 겉껍질과 장, 선천면역으로 이어지는 여러 방어선이 갖춰져 있다. 꿀벌이 수많은 질병 위협 속에서도 벌무리를 지켜내는 비결은, 여러 벌의 협동과 한 마리 한 마리의 방어 능력이 여러 겹으로 맞물리는 데 있다.

꿀벌을 위협하는 주요 요인 ©국립농업과학원
1.벌통 전체가 먼저 막는다
벌통 입구에서는 경비벌이 냄새로 동료를 구별하고 다른 벌무리의 벌이나 말벌을 막는다. 안쪽에서는 일벌이 나무 수지로 만든 프로폴리스를 틈과 벽에 바른다. 프로폴리스는 세균과 곰팡이의 증식을 억제하는 여러 식물 성분을 품고 있어, 벌통 안을 보호하는 ‘천연 방어막’ 역할을 한다.
벌방 속 유충이 병들거나 죽으면 일벌은 뚜껑을 열어 유충을 밖으로 치우는데, 이를 ‘위생행동’이라고 한다. 바닥의 찌꺼기와 죽은 벌을 밖으로 나르는 청소도 감염원이 머무는 시간을 줄인다. 또 꿀벌은 스스로 몸을 털거나 동료의 몸을 닦아주는 몸단장으로 성충에 붙은 꿀벌응애를 떼어낸다. 꿀벌응애는 바이러스를 옮길 뿐 아니라, 포유동물의 간과 지방조직 역할을 함께 하는 꿀벌의 ‘지방체’를 주로 먹는다. 지방체는 에너지를 저장하고, 영양대사와 해독, 면역 등에 관여하는 중요한 조직이다. 응애의 섭식으로 지방체가 손상되면 영양대사와 해독, 면역 기능 등에 영향을 받을 수 있으며, 여기에 응애가 옮기는 바이러스 감염까지 겹치면서 꿀벌의 건강과 수명이 크게 저하될 수 있다.
벌통의 공기와 온도도 여러 벌이 함께 관리한다. 더우면 날개로 바람을 일으키고 물을 증발시켜 열을 식히며, 추우면 서로 모여 열을 낸다. 일부 실험에서는 백묵병 원인 곰팡이에 노출된 봉군에서 유충을 기르는 곳의 온도가 소폭 올라가는 ‘사회적 발열’ 현상이 관찰됐다. 이처럼 병든 유충을 제거하는 위생행동, 서로의 몸을 청소하는 몸단장, 항균성 프로폴리스의 이용, 감염 시 나타나는 사회적 발열처럼 여러 벌이 협력해 병원체와 기생충의 유입·증식·전파를 줄이는 방어를 ‘사회적 면역’이라고 한다.

봉군단위 방어 전략 : 몸단장과 응애 제거, 병든 유충 청소, 프로폴리스 도포, 입구 환기 ©국립농업과학원
2. 한 마리의 몸에도 방어벽이 있다
병원체가 벌통 안에 들어와도 곧바로 몸속에 침입하는 것은 아니다. 단단한 겉껍질이 첫 장벽이 되고, 먹이와 함께 들어온 미생물은 장에서 또 다른 방어벽을 마주한다. 중장에는 음식물과 장세포 사이를 가르는 ‘위식막’이라는 얇은 보호막이 있다. 꿀벌 고유의 장내 공생미생물 중 일부는 면역 신호를 자극하고 항균펩타이드의 발현을 높여 면역반응을 돕는다.
장벽이 뚫리면 태어날 때부터 갖춘 ‘선천면역’이 움직인다. 혈구세포는 사람의 백혈구와 비슷하게 작은 침입자를 삼킨다. 큰 침입자는 여러 세포가 둘러싸 가둔다. 상처 부위에 멜라닌을 침착시켜 검게 만들고 봉쇄하는 ‘멜라닌화’ 반응도 있다. 또 디펜신 같은 ‘항균펩타이드’, 즉 세균을 비롯한 미생물의 증식을 억제하거나 제거하는 작은 단백질성 물질을 만든다. 바이러스에는 그 유전정보를 잘게 잘라 증식을 방해하는 ‘RNA 간섭’이 중요한 방어로 작동한다.
농약이나 식물의 독성물질에는 해독효소가 대응한다. 이 효소는 일부 유해물질을 분해하거나 몸 밖으로 내보내기 쉬운 형태로 바꾼다. 겉껍질과 장의 물리적 장벽부터 혈구세포, 항균펩타이드, RNA 간섭, 해독 시스템까지 다양한 방어기작이 서로 보완하며 한 마리의 꿀벌을 지킨다.
3. 항체는 없어도 미리 대비할 수 있다
사람의 백신은 적응면역을 자극해 항체와 기억 B·T세포 등을 만들어 다시 같은 병원체를 만났을 때 빠르게 대응하도록 한다. 꿀벌에게는 항체가 없지만, 앞서 병원체나 그 구성 성분에 노출된 뒤 같은 병원체 또는 관련된 병원체를 다시 만났을 때 방어반응이나 저항성이 달라지는 경우가 있다. 이를 ‘면역 프라이밍(immune priming, IP)’, 즉 면역의 사전 준비라고 부른다. 척추동물의 면역기억과 같은 원리는 아니며, 이전의 노출 경험이 선천면역계의 상태에 영향을 주어 이후 방어반응을 변화시키는 현상이다.
부모가 받은 면역 자극이 자손의 방어에 영향을 주면 ‘세대 간 면역 프라이밍(transgenerational immune priming, TGIP)’이라고 한다. 열로 죽인 미국부저병균을 여왕벌에게 주입한 실험에서는, 그 뒤 태어난 자손 유충이 같은 균에 노출됐을 때 더 높은 저항성을 보였다. 어미 세대가 받은 면역 자극이 다음 세대의 방어 준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뜻이다. 다만 이러한 세대 간 면역 프라이밍이 모든 병원체에서 나타나는 것은 아니며, 병원체와 노출 방식에 따라 효과가 달라질 수 있다.
그렇다면 여왕벌이 만난 병원체의 정보는 어떻게 알까지 갈까?
중요한 연결고리는 ‘비텔로제닌’이다. 비텔로제닌은 원래 알의 영양분을 운반하는 단백질인데, 세균이나 세균·곰팡이에서 유래한 면역 자극 물질에도 결합할 수 있다. 형광 표시한 대장균 조각을 이용한 실험에서는 비텔로제닌이 대장균 유래 조각을 발달 중인 알 안으로 운반할 수 있음이 확인됐다. 영양 배달차가 병원체의 ‘수배 전단’도 함께 싣고 가는 셈이다.
이를 순서대로 보면 쉽다. 여왕벌이 병원체 조각을 만나면, 그 조각의 일부가 비텔로제닌과 결합해 알로 이동한다. 이 전달 경로가 다음 세대의 방어 준비에 관여할 가능성이 제시됐다. 여왕벌의 경험이 그대로 복사되는 것은 아니지만, 병원체 조각이 어미에서 알로 이동할 수 있는 생물학적 통로가 확인된 것이다.

꿀벌의 세대 간 면역 프라이밍 ©국립농업과학원
4. 로열젤리는 먹이이자 면역 신호의 전달 통로
간호벌은 머리에 있는 하인두샘(유충 먹이를 만드는 분비샘) 등에서 로열젤리를 만들어 여왕벌과 어린 유충에게 먹인다. 로열젤리에는 영양분뿐 아니라 디펜신-1처럼 미생물을 억제하는 물질도 들어 있다.
간호벌에게 형광 표시한 열로 죽인 미국부저병균을 먹인 실험에서는 로열젤리에서 이 세균의 조각이 확인됐고, 향균물질인 디펜신-1의 양도 늘었다. 이는 간호벌이 접한 미생물의 조각과 항균물질이 로열젤리에 실려 여왕벌이나 어린 유충에게 전달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병원체 조각과 면역 자극이 이동하는 길은 두 갈래로 볼 수 있다. 여왕벌에서 비텔로제닌을 거쳐 알로 이어지는 길은 ‘세대 간 전달’이고, 간호벌에서 로열젤리를 거쳐 다른 벌로 이어지는 길은 ‘벌무리 안의 전달’이다. 하나는 다음 세대를 준비시키고, 다른 하나는 함께 사는 벌들의 방어를 연결한다.
꿀벌의 질병 저항성은 한 가지 물질이 만드는 힘이 아니다. 벌통 밖에서는 경비벌이 문을 지키고, 안에서는 청소벌과 간호벌이 움직인다. 프로폴리스는 벌통의 미생물 환경을 조절하고, 여러 일벌은 환기와 온도 조절로 벌통 환경을 일정하게 유지한다. 한 마리의 몸에서는 겉껍질·장·혈구세포·항균물질이 빈틈을 메운다. 여기에 일부 병원체에서는 어미의 면역 자극이 알로 이어져 자손의 방어 준비를 도울 수 있다. 수만 마리가 사는 벌통이 건강을 지키는 비결은 여러 방어선이 서로 이어지는 데 있다.
5. 면역 원리를 활용한 꿀벌 면역증강 기술
면역 프라이밍과 벌무리 안에서 면역 자극이 전달될 수 있다는 선행연구를 바탕으로, 농촌진흥청은 꿀벌에게 먹이는 급이형 면역증강제를 개발하였다. 된장에서 분리한 고초균(Bacillus subtilis KACC 15948)을 열처리한 뒤 화분떡에 섞어 급여하는 방식으로, 꿀벌의 선천면역 반응을 유도해 병원체에 대한 방어력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개발 과정에서는 열처리한 고초균의 적정 급여량과 급여 기간을 정하고, 이를 먹은 일벌과 유충의 면역 관련 유전자 반응을 조사하였다. 또한 일벌의 비텔로제닌과 하인두샘, 로열젤리와 관련된 반응을 조사해, 급여에 따른 면역 자극이 유충의 방어 반응과 연결될 가능성도 살펴보았다.
미국부저병과 백묵병 원인체에 유충을 노출시켜 방어 효과를 평가한 결과, 면역증강제를 먹인 유충은 대조군보다 높은 생존율을 보였다. 농촌진흥청은 이러한 결과를 바탕으로 면역증강제의 제조 조건과 꿀벌 적용 효과를 검증했으며, 면역증강용 사료 제조 기술의 특허도 출원했다.
농촌진흥청은 이번 연구 성과를 발표하고, 향후 현장 적용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검토해 기술보급 기반을 마련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꿀벌의 질병 대응력을 높이고, 양봉농가가 벌무리를 보다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지원할 예정이다.
글=오대근 국립농업과학원 양봉과 농업연구사
정리=더농부
▽클릭 한 번으로 농업·식품의 전문가를 만나보세요! ▽
▽더 농부 구독하고 영상으로 농업 콘텐츠를 즐겨보세요! ▽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