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액션과 전쟁영화부터 애니메이션까지 장르를 넘나들며 일본 대중영화의 전성기를 이끈 영화감독 마스다 도시오가 별세했다. 향년 98세.
25일 일본 언론에 따르면 마스다 감독은 지난달 26일 오전 도쿄의 한 병원에서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장례는 가족과 가까운 지인들만 참석한 가운데 치러졌다.
지난 1927년 10월 일본 고베에서 태어난 마스다 감독은 오사카외국어대(현 오사카대) 러시아어과를 졸업한 뒤 영화계에 뛰어들었다. 신도호를 거쳐 닛카쓰로 옮겼고 1958년 개봉한 ‘마음과 육체의 여행’으로 감독 데뷔했다.
특히 일본의 대표적인 스타 배우 이시하라 유지로와 명콤비로 이름을 알렸다. ‘녹슨 칼’과 ‘붉은 부두’, ‘붉은 손수건’ 등 이시하라 주연 영화만 25편을 연출하며 1950~1960년대 닛카쓰 액션영화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장르의 경계도 두지 않았다. 1968년 닛카쓰를 떠나 프리랜서로 활동한 뒤 전쟁영화와 시대극, 청춘영화, 애니메이션 등을 폭넓게 연출했다.
1970년에는 일본의 진주만 공격을 그린 미국·일본 합작 영화 ‘도라 도라 도라!’의 일본 측 감독을 후카사쿠 긴지와 함께 맡았다. 당초 구로사와 아키라가 일본 측 연출을 맡았지만 제작 과정에서 하차하면서 두 사람이 뒤를 이었다.
마스다 감독의 이력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은 ‘우주전함 야마토’다. 1974년 방영을 시작한 TV 애니메이션에는 구성·감수로 이름을 올렸고, 1977년 TV판을 재편집해 만든 극장판에서는 감독을 맡았다.
‘우주전함 야마토’ TV판은 첫 방송 당시 낮은 시청률에 시달렸지만 종영 이후 재방송을 거치며 청소년과 젊은 층을 중심으로 팬덤이 형성됐다. 이를 바탕으로 나온 극장판은 관객 225만여명을 동원하고 흥행수입 21억엔을 기록해 그해 일본 영화 흥행 9위에 올랐다.
그러나 ‘야마토’가 일본 대중문화에 남긴 의미는 흥행 성적에 그치지 않았다.
1977년 극장판 개봉 당시 젊은 관객들이 극장 앞에서 밤을 새우며 줄을 서는 모습이 화제가 되면서 일본 언론에서는 ‘애니메이션 붐’이라는 표현이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이전까지 ‘만화영화’나 ‘TV 만화’로 불리며 주로 어린이용으로 취급되던 애니메이션에 중·고교생과 청년층이라는 새로운 관객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시장에 각인시킨 작품으로 평가된다.
팬층의 확대는 산업 구조에도 영향을 미쳤다. ‘야마토’ 흥행 이후 작품 설정과 제작진, 원화 등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출판물이 잇따라 등장했고 1978년에는 일본을 대표하는 애니메이션 전문지 ‘아니메주’가 창간됐다. 청소년 이상을 겨냥한 장편 SF 애니메이션 시장도 확대되면서 이후 ‘기동전사 건담’ 등을 낳은 1970년대 후반 일본 애니메이션 붐의 토대가 됐다.
실사영화 감독이었던 마스다의 연출 감각도 ‘야마토’ 극장판에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를 받는다. TV 시리즈의 방대한 이야기를 극장용 장편으로 다시 짜면서 인물과 서사를 압축했고, 이후 시리즈에서도 감독·각본·감수 등으로 참여했다.
‘우주전함 야마토’는 한국에서도 1980년 MBC에서 ‘날으는 전함 V호’라는 제목으로 방영됐다.
마스다 감독은 이후에도 ‘203고지’, ‘제로센 불타다’, ‘하이틴 부기’, ‘사장’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연출했다. 1993년 일본 정부의 자수포장을 받았고 1999년에는 욱일소수장을 수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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