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인공지능(AI) 모델 출시 전 정부의 사전 검증을 의무화하는 행정명령 서명을 막판에 보류한 배경에는 “중국과의 기술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실리콘밸리 측 경고가 결정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의 AI 거버넌스 향배가 안보 라인이 아닌 친(親)기업·기술 진영의 손에 좌우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과 경쟁에서 불리하게 작용”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2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이자 벤처투자자인 데이비드 색스가 서명식을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과 직접 통화해 “행정명령이 AI 산업 발전 속도를 늦추고 중국과의 경쟁에서도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고 보도했다. 색스는 “이 행정명령은 그동안 강력한 규제를 요구해 온 ‘AI 비관론자’들에게 승리를 안겨주는 결과가 될 것”이라고도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초 행정명령에 유보적이었던 트럼프 대통령은 색스의 주장에 공감하며 돌연 서명을 연기했다. 워싱턴포스트와 폴리티코 등에 따르면 이미 서명식을 위해 AI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백악관으로 초청된 상태였고 일부는 비행기로 워싱턴에 도착한 뒤였다. 행사장 준비도 마쳐진 시점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서명 연기 이유를 묻는 기자들에게 “우리는 중국을 앞서고 있으며 그 우위를 흔들 어떤 일도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행정명령의 일부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며 “(이번 명령이)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봤다”고도 덧붙였다. ‘페이팔 마피아’ 색스, 비공식 채널로 정책 뒤집어 색스는 트럼프 행정부 출범 초기 ‘AI·가상화폐 차르’로 정책을 총괄하다 올해 3월 공식 직책에서 물러났다. 현재는 백악관 과학기술자문위원회 공동위원장 직함을 갖고 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와 함께 온라인 결제기업 페이팔을 키운 ‘페이팔 마피아’의 핵심 멤버이기도 하다. 주목할 점은 색스가 정책 결정 과정을 사실상 우회했다는 점이다. WSJ과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마이클 크라치오스 백악관 과학기술정책국장과 윌 셰어프 비서실 행정담당관, 션 케언크로스 국가사이버국장 등 실무 라인은 수 주에 걸쳐 행정명령 초안을 다듬은 뒤 색스에게도 브리핑했다. 색스는 당시 “수용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반응을 보였으나 서명식 당일 아침 트럼프 대통령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입장을 뒤집었다. 이 때문에 일부 백악관 참모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행정명령을 이미 승인한 것으로 알고 있었으며 막판 개입에 강하게 반발한 것으로 전해졌다. 백악관 ‘AI 정책 노선 충돌’ 수면 위로 보류된 행정명령은 민간 기업이 출시하는 고성능 AI 모델에 대해 정부와 정보를 사전 공유하고 안전성 시험을 거치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사이버 공격 수행이나 소프트웨어 취약점 탐지 능력을 갖춘 최신 모델이 잇따라 등장하면서 백악관 안보 라인은 최소한의 검증 장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쟁점은 사전 공유 기간이었다. 초안은 출시 90일 전까지 정부와 모델을 공유하도록 했으나 업계는 14일을 요구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색스는 “자율적 검증이라지만 사실상의 인허가 제도로 변질될 수 있다”는 우려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한 것으로 폴리티코는 보도했다. 이번 사안으로 백악관 내부의 AI 정책 노선 충돌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는 평가다. 중국과의 기술 패권 경쟁을 우선시하는 친기업·실리콘밸리 진영이 보안·사이버안보 라인을 압도한 모양새다. 비판론도 만만치 않다.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는 “AI 개발 속도를 무리하게 끌어올리면 부작용 탓에 결국 더 강한 규제가 돌아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