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동차 연비 규제의 빗장을 풀면서 현대자동차그룹의 ‘파워트레인 다변화 전략’이 실익을 챙기게 됐다. 전기차 뿐 아니라 하이브리드·내연기관을 아우르는 전략이 규제 완화와 맞물리면서 현대차가 미국에서 수익성을 방어하는 동시에 전기차 전환 속도를 조절할 수 있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6일(현지시각)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새로운 자동차 연비 기준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미 교통부와 도로교통안전국(NHTSA)는 지난 28일 기업평균연비(CAFE) 기준을 최종 확정했다. CAFE는 자동차 제조사가 미국에서 판매하는 차량의 평균 연비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맞추도록 하는 제도다. 새 기준에 따르면 2031년식 승용차·경트럭의 평균 연비 기준은 갤런당 34.9마일로 낮아진다. 기존 바이든 행정부가 설정한 갤런당 50.4마일보다 크게 완화된 수준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조치가 하이브리드 판매를 확대해 온 현대차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내다봤다. 현대차는 전기차와 하이브리드를 병행하며 수익성과 전기차 전환을 함께 추진하고 있다. 2030년까지 북미에서 10개 이상의 하이브리드 모델을 운영하고, 판매 비중을 50%까지 높인다는 계획이다. 실제 올해 상반기 현대차의 하이브리드 판매는 11만4870대로 전년 대비 50% 늘었다. 반면 전기차 판매는 2만7462대로 11%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전기차 수요 둔화에 대응해 미국 조지아주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에 도입한 혼류 생산체계도 현대차의 실리를 키우는 요인이 되고 있다. 그룹은 당초 HMGMA를 전기차 중심 생산 거점으로 추진했지만 생산 유연성을 위해 전기차와 하이브리드 등 다양한 파워트레인을 생산할 수 있도록 했다.
HMGMA는 최대 10개 차종을 생산할 수 있으며 향후 연간 생산능력을 최대 50만대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현재 현대차 아이오닉 5·아이오닉 9 등 전기차와 스포티지 하이브리드를 이곳에서 생산하고 있다.

이번 규제 완화로 하이브리드와 내연기관을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혼류 생산의 가치도 커졌다. 전기차 수요가 기대에 못 미치더라도 하이브리드 생산으로 공장 가동률을 방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규모 전동화 생산시설에 투입한 투자금의 회수 부담을 낮추는 동시에, 전기차 수요가 회복되면 다시 EV 생산을 늘릴 수 있는 유연성도 확보할 수 있다.
여기에 CAFE 기준을 맞추기 위한 기술 비용과 크레딧 구매 부담을 낮출 수 있다는 점도 호재로 꼽힌다. 제너럴모터스(GM)와 포드는 2031년까지 기술 비용이 각각 204억달러(약 27조6664억원), 58억달러(약 7조8659억원) 감소할 것으로 추산됐다. 전체 완성차 업체의 기술 비용 감소액은 606억달러(약 82조1917억원)에 달한다. 현대차의 구체적인 절감액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연비 기준을 맞추기 위해 투입해야 할 기술·생산 비용이 줄어 수익성 방어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다만 규제 완화가 장기화하면 부담이 커질 수 있다. 하이브리드로 공장 가동률을 방어할 수 있지만 전기차 생산 전환이 늦어지면 관련 설비 투자 회수가 지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럽에서는 전기차, 미국에서는 내연기관·하이브리드에 대응하는 등 시장 별로 다른 파워트레인을 동시에 개발해야 하는 부담도 커진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규제 완화는 현대차그룹이 미국에서 하이브리드와 내연기관의 수익성을 지키면서 전기차 전환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준 것”이라며 “다만 시간이 길어질수록 미국과 유럽의 서로 다른 시장 요구에 대응하기 위한 연구개발과 생산 투자가 동시에 필요해지는 만큼, 전동화 전환 시점을 어떻게 조절할지가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허인학 기자
ih.he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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