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64살 독자의 사연입니다.
작년에 35년 다닌 회사를 퇴직하고 처음으로 고등학교 동창회에 나갔습니다. 직장 때문에 몇 년 동안 참석하지 못했던 터라 오랜 친구들을 만날 생각에 며칠 전부터 괜히 설렜습니다. 그런데 식당에 들어가 자리에 앉은 지 채 10분도 되지 않아, 나오지 말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반가운 인사 다음에 나온 질문은 직장이었습니다
“너 아직 회사 다니냐?” 친구 하나가 묻기에 작년에 퇴직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곧바로 “그래도 임원까지 했으면 퇴직금 꽤 받았겠네”라는 말이 돌아왔습니다.
다른 친구는 연금이 얼마나 나오는지 물었고 또 다른 친구는 요즘 뭐 하고 지내느냐고 물었습니다. 별뜻 없는 질문이라는 걸 알면서도 이상하게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40년 만에 만난 친구들에게 저는 여전히 한 사람의 친구가 아니라 직장과 돈으로 설명해야 하는 사람처럼 느껴졌습니다.

자리에 앉고 보니 대화도 자연스럽게 나뉘었습니다
한쪽에서는 아직 사업을 하는 친구들이 골프와 해외여행 이야기를 했습니다. 다른 친구는 아들이 의사라며 손주 이야기를 했고 누군가는 최근 아파트를 팔아 얼마를 벌었다는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저는 웃으며 듣고 있었지만 점점 할 말이 없어졌습니다. 퇴직 후 아내와 동네 산책하고 가끔 등산하는 것이 요즘 제 일상의 대부분이었기 때문입니다. 동창회에 오기 전까지는 그 생활이 꽤 만족스러웠는데 그 자리에 앉아 있으니 갑자기 별것 없는 인생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옆자리 친구가 한마디를 했습니다
식사가 거의 끝날 무렵 옆에 있던 친구가 조용히 물었습니다. “그래서 요즘 행복하냐?” 처음으로 직장도, 돈도, 자식도 묻지 않는 질문이었습니다. 저는 잠시 생각하다가 “응, 생각보다 괜찮아. 아침에 늦게 일어나도 되고 아내랑 걷는 것도 좋더라”고 답했습니다.
친구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럼 됐지. 우리는 아직도 누가 잘사나 확인하려고 모이나 보다.” 그 말을 듣는데 조금 전까지 섭섭했던 마음이 이상하게 풀렸습니다. 친구들이 나를 무시했던 것이 아닐 수도 있었습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아직 사람의 안부를 묻는 방법보다 직장과 돈, 자식의 성취를 묻는 방식에 더 익숙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처음 한 말
집에 들어오니 아내가 물었습니다. “동창회 재미있었어?” 저는 잠깐 생각하다가 대답했습니다. “응. 그런데 다음에는 그냥 몇 명이랑 밥이나 먹으려고.”
많은 사람에게 잘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보다 내 요즘 생활을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 몇 명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퇴직하고 나니 명함에 적혀 있던 회사와 직함이 사라졌습니다. 그제야 직함 없이도 나를 궁금해해 주는 사람이 누구인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퇴직 후 인간관계가 서운해지는 이유는 사람이 갑자기 변해서만은 아닐 것입니다. 직장과 직함이 사라지고 나면 그동안 무엇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는지가 선명하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들어 다시 만나고 싶은 친구는 “요즘 얼마 버니?”라고 묻는 사람이 아니라, “그래서 요즘 너는 행복하니?”라고 물어봐 주는 사람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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