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가 대신 길드 접수원으로…의뢰서·전리품 대조하며 퀘스트 판정
낮에 들은 모험담 수집해 사건 해결에 도움
얼리 액세스 버전, 챕터 6까지 구현

어릴 적 동네 사내아이들은 으레 ‘지구용사’나 ‘슈퍼 히어로’ 같은 영웅 이야기를 좋아했다. 학교가 끝나면 집에 와서 녹화된 비디오를 시청했고, 놀이터에선 서로 영웅 가면을 쓰고 장난감 칼을 휘두르며 놀았던 기억이 난다. 너도 나도 ‘주인공’이었던 시절이다.
그러나 자라면서 모두가 주인공일 수 없다는 사실을 서서히 받아들인다. 전설의 용사는 허구다. 잘 나가는 연예인이나 정치인 등 모두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사람도 소수일 뿐이다. 대부분은 ‘소시민’으로서 오늘 하루의 행복에 만족하고 사소한 불운에 슬퍼하는 일상을 산다. 주인공에 대한 열망은 마음 한 구석에 숨긴 채.
블랜비가 개발하고 그라비티가 배급한 ‘갈바테인: 모험가 길드 사무소’는 이런 소시민을 주인공으로 삼았다. 게임에서 주인공 플레이어가 맡는 역할은 모험가 길드의 ‘접수원’이다. 직접 검을 들고 마물을 쓰러뜨리는 모험가가 아니다. 전투를 마치고 돌아온 모험가의 이야기를 듣고 의뢰를 제대로 수행했는지 판정한다. 때로는 이번 전투가 힘들었다는 모험가의 하소연을 들어주고, 간혹 서류와 전리품을 깐깐하게 대조해 가며 의뢰 완료를 거절하기도 한다.
게이머들이라면 익숙할 만한 판타지 세계지만 시선은 책상 너머로 고정된다는 점이 게임의 특징이자 매력이다. 특히 모험가들을 상대하면서 점차 이들의 마음을 얻고 상담사이자 조언가 역할도 수행한다. 나중에는 작중 인물들이 내리는 중대한 결정에도 관여하면서 주인공 이상의 존재감을 뽐낸다.
오늘자 기사도 마감 시간을 늦춰 가며 겨우 써내는 한 명의 소시민으로서 얼리 액세스 버전으로 출시된 갈바테인을 직접 해봤다. 소소한 욕망을 담아 주인공 이름을 ‘힘을숨긴박상준’으로 설정한 것은 비밀이다.

검 대신 '마물 도감'을 들어라
우선 낮 시간대는 퀘스트 검토 시간이다. 일반인들의 의뢰서를 검토하고 해당 의뢰를 완수하고 돌아온 모험가의 진술을 들으며 정상 완료 여부를 판단한다. 설정상 이 세계의 일반인들은 몬스터의 생김새나 종류에 무지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모호한 설명과 ‘마물 도감’을 대조하면서 의뢰 대상이 어떤 몬스터인지 판별해내는 것부터 일이다. 이 과정에서 의뢰를 혼동한 모험가가 엉뚱한 가축을 사냥해 오기도, 전리품 없이 허탕만 치고 돌아오기도 한다.

그렇기에 주인공은 등록된 모험가의 얼굴과 이름, 모험가 면허와 의뢰의 만료일을 꼼꼼히 확인해야 한다. 제출한 전리품이 의뢰 내용에 들어맞는지 살핀다. 의심스러운 대목은 질문으로 확인해야 한다. 판정을 잘못하면 일급이 깎인다. 매일 여관 숙식비도 빠져나가므로 실수를 마냥 가볍게 넘길 수는 없다.
서류와 진술을 대조하는 방식에서는 유명 인디게임 ‘페이퍼스, 플리즈’가 떠오른다. 국경 검문소의 심사관으로서 입국자의 신분증과 허가 서류를 대조해 통과 여부를 결정하는 게임이다. 다만 주인공이 직접 적을 제압하고 문제를 적극 해결할 수 있는 페이퍼스, 플리즈와 달리 ‘갈바테인’의 무게중심은 대화에 있다. 주인공이 개입할 수 있는 요소는 최소화 하고 모험가가 무엇을 보고 왔는지뿐 아니라 왜 그런 말을 하는지, 다른 인물과 어떤 관계인지 알아가는 과정을 통해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비주얼 노벨에 가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검토 항목은 이야기가 흐를수록 늘어난다. 초반에는 의뢰서와 전리품을 대조하는 데 익숙해지면 되지만, 이후 모험가 등급과 추가 정보를 얻는 선택지 등이 등장한다. 그렇다고 매번 복잡한 추리를 요구하지는 않는다. 마물의 특징을 찬찬히 읽고 함정 선택지를 걸러내면 대체로 판정할 수 있다. 다만 일부 단서 추리 의뢰는 사정이 다르다. 수수께끼가 가리키는 지역을 지도에서 찾아야 하는데, 꽤나 어렵다. 의뢰 10개 가운데 2개는 끝내 풀지 못했다.
게임에서 확인하는 서류와 정보들은 세계관을 읽는 단서이기도 하다. 한 예로, 드워프 왕국 에스테르 출신 모험가 ‘갈렌’은 처음에는 배 나온 드워프 전사 아저씨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의 모험가 등급을 확인하면 위험도 A급 마물까지 상대할 수 있는 ‘마스터 모험가’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작중 설명에 따르면 마스터 모험가는 한 나라의 국력과 맞먹는 무력을 지녔다. 어쩐지 이 아저씨가 도와 달라고 부탁한 내역을 들어 보면 죄다 왕국 단위 문제긴 했다. ‘무력’을 확인하니 앞서 나눈 대화까지 다르게 해석된다.

금쪽이 모험가도 눈물 흘리는 접수원 상담소
진짜 재미는 저녁 시간에 이어진다. 낮에 길드에서 퀘스트를 접수하며 들은 모험담은 저녁 선술집에서 스토리를 해결할 단초가 되기도 한다. 한 등장인물이 가치관을 위해 가문을 떠날지, 현실을 직시할지 고민할 때, 접수원은 낮에 모험가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골라 들려줄 수 있다. 주체적인 선택을 강조하는 경험을 전할 수도, 현실을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경험을 전할 수도 있다.


선술집에서는 마물 전리품을 재료로 요리도 한다. 레시피를 따라 만들거나 재료를 달리 넣어볼 수 있고, 손님들은 음식의 완성도에 따라 호감도가 결정된다. 낮에는 보고의 허점을 짚던 접수원이 저녁에는 음식을 내고 고민을 들어준다. 이 두 역할을 오가는 동안 모험가들은 조금씩 자신의 사정을 드러낸다.

이밖에도 실종된 공주를 찾는 일, 서먹해진 친구들을 화해시키는 일, 영주가 얽힌 곤란한 진상 민원 처리하기, 금기 마법에 손댄 마법사 구출하기 등의 에피소드가 옴니버스 식으로 이어진다. 처음에는 연관이 없어 보이던 인물들의 관계도 대화와 의뢰를 거치며 드러난다. 정보들은 보통 파편처럼 나뉘어 등장한다. 그동안 들은 말을 기억하고 세계의 빈칸을 스스로 채우는 재미를 느끼게 된다.

의외로 만족스러웠던 부분은 ‘작화’다. 미형으로 그려진 인물들의 표정과 몸짓은 자칫 지루할 수 있는 대화 위주 스토리를 따라가게 하는 힘이다. 일부 등장인물은 주인공에게 호감을 내비치기도 하는데, 문득 게임 장르를 ‘연애 시뮬레이션’으로 만들었어도 대성했겠다 싶었다. 여러모로 독거 총각의 심금을 울리는 게임이다. 판타지 세계의 거창한 사건보다 눈앞의 대화에 더 마음이 가도록 만드는 것도 능력이다.

얼리 액세스 버전에서 확인할 수 있는 이야기는 6장까지다. 핵심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의 속사정이 본격적으로 드러나며 이야기에 깊이 빠져들 무렵 멈춰서 아쉽기도 하다. 분기 별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른 스토리 변화도 있는 듯 하지만, 현재 공개된 분량 만으로는 정확히 어떤 분기 변화가 있는지까진 판단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주인공’이 아닌 인물을 주인공 삼아 이야기를 흡인력 있게 끌고 나간다는 점에선 충분한 게임성과 가능성을 엿봤다. 향후 출시될 정식 출시 버전이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지 기다리게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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