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럼프 대통령이 2026년 4월 13일, 15개월간 비어 있던 주한 미국 대사 자리에 미셸 박 스틸(한국명 박은주·70) 전 연방 하원의원을 지명했다. 한국 정부의 아그레망(외교 사절 수락 동의)과 상원 인준 절차를 거쳐 부임하게 될 그는, 1955년 서울에서 태어난 한국계 여성이다.
그러나 이 지명을 단순한 친한파 인사로 읽으면 오판이다. 반공을 가훈처럼 품고 자란 실향민 2세이자, 미국 의회에서 중국공산당 견제 의제에 가장 선명하게 개입해 온 대중(對中) 강경파가 서울에 온다. 그것은 트럼프 2기 행정부가 한미동맹의 현주소를 어디로 보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전략적 메시지로 해석된다.
실향민 2세, 그리고 미국 정계 입문
스틸의 이력은 한반도 분단과 냉전의 산물이다. 그의 부친은 한국전쟁 당시 북한 공산 정권을 피해 남으로 내려온 실향민이다. 스틸은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일본에서 성장하며 한국어·일본어·영어 3개 국어를 익혔고, 1975년 스물에 미국으로 이주했다. 어머니가 LA에서 운영하던 의류 상점이 과도한 세금에 시달리는 것을 목격하면서 정계 입문을 결심했다고 스스로 밝힌 바 있다.
이후 캘리포니아주 조세형평국 위원(2007~2015), 오렌지카운티 감독위원회 부의장(2015~2021)을 거쳐 2020년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됐다. 한국계 여성으로는 역대 최초였다. 2024년 재선 도전에서 초박빙 끝에 낙선했으나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 직전 공개 지지를 표명할 만큼 공화당 내 입지가 탄탄하다. 낙선 후 스틸은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 특히 중국에 맞서 아시아 국가의 자유를 위해 싸우는 것에 기여하고 싶다”고 밝혔고, 그 약속의 무대가 서울이 됐다.
대중국 매파의 구체적 이력
스틸을 이해하려면 그가 의회에서 무엇을 했는지를 봐야 한다. 2021년 그는 공자학원의 미국 내 영향력 차단을 촉구하는 초당적 서한에 참여하며 “중국공산당의 위협에 단호히 대응해야 한다”고 공개 경고했다.
2023년부터는 하원 외교위원회 산하 ‘미중 전략경쟁 특별위원회’에서 활동하며 중국의 지식재산권 도용과 인권 침해 문제를 집중 추궁했다. 또 하원 세입위원회(Ways and Means Committee) 위원으로도 활동했는데, 이는 무역 보복과 관세, 공급망 재편이라는 트럼프의 경제적 압박 수단에 정통하다는 의미다. 그는 단순한 이념형 투사가 아니라, 대중 무역·기술·안보 의제를 의회 안에서 실제로 다뤄본 정책 전문가다.
그가 의회에서 다룬 의제들은 한국의 현실과 직접 맞닿아 있다. 항만 물류 시스템을 통한 중국의 불법적 데이터 수집, 대학에 유입된 중국 자금과 기술 탈취, 채무함정 외교를 통한 인도태평양 인프라 장악, 탈북자 강제송환 문제에 이르기까지, 스틸은 한국에 부임하기 전에 이미 한국이 안고 있는 중국 문제의 구조를 꿰뚫고 있다. 한국 전역에 운영 중인 공자학원, 스파이방지법 부재, 중국산 감시 장비 문제가 그의 시야 밖에 있을 리 없다.
15개월 공백의 의미, 그리고 이번 인선의 무게
트럼프 행정부는 출범 이후 15개월간 주한 미국 대사 자리를 비워두었다. 이 공백은 단순한 인사 지연이 아니다. 그 기간 동안 한국에서는 정권 교체가 이루어졌고,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직후 방중(訪中)에 나섰으며, 관세·방위비·반도체 통제 등 굵직한 한미 현안이 대사 없이 처리되거나 표류했다. 워싱턴이 서울의 정치 지형을 주시하면서 시간을 들여 인선을 결정했다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그 공백 끝에 낙점된 인물이 반공·반중의 이력을 공개적으로 내세워 온 스틸이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트럼프 행정부는 그를 “가장 선명한 보수주의자이자 공산주의를 실제로 경험한 인물”로 거론해 왔다. 물론 실제 대사 행보는 국무부 라인과 백악관 대외전략의 틀 안에서 조정될 것이고, 의회 토론자처럼 발언하기보다 외교적 조율을 우선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번 인선의 신호는 분명하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한미 현안의 무게 중심을 대중 견제와 동맹 정렬로 이동시키고 있다는 것, 그리고 서울에 그것을 현장에서 감지할 인물을 배치했다는 것이다.
이재명 정권이 마주한 현실
스틸 지명 소식이 전해지자 범여권 일각에서 즉각 반발이 나왔다. 조국혁신당 김준형 의원은 국회 외교통일위에서 “한국 사회 내부 분열을 심화시킬 위험성이 있다”며 아그레망 절차를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것은 국회 일부 의원의 정치적 반응이지, 정부의 공식 외교 방침이 아니다. 동맹국 대사 지명자에 대해 아그레망을 정치적 압박 카드처럼 사용하는 것은 외교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비용을 치르는 선택이다.
그 반발이 오히려 말해주는 것이 있다. 북한 인권을 거론하고 공자학원을 위험 기관으로 규정해온 인물이 바로 옆에서 대사로 근무한다는 사실이 불편한 이유가 무엇인지, 스스로 답이 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2026년 1월 방중에서 시진핑 주석과 회담하며 “한중관계 전면 복원 원년”을 선언했다. 대만 언론은 이 과정에서 중국이 하나의 중국 강요, 한미동맹 이간, 주한미군 역할 축소, 대만 유사시 중립화 등을 요구했다는 이른바 ‘4요4답(四要四答)’ 의혹을 보도했으나, 구체적 합의 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확인된 것만으로도 충분히 무겁다.
이재명 정부는 중국인 단체관광 무비자 입국을 허용하면서 상호주의 없이 중국인에게만 특혜를 부여했고, 서해 불법 해양구조물 문제에서는 소극적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스파이방지법은 이재명 정부 출범 이전부터 거대 야당의 입법 비협조로 제자리걸음을 반복했고, 국내 공자학원 전수 조사는 여전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 구조 속에서 이재명 정권이 그동안 보여준 행보는 “대중 견제를 최우선 과제로 설정한 대사”와 마찰 없이 공존하기 쉽지 않다.
산적한 현안, ‘적당한 친미 흉내’로는 통하지 않는다
이재명 정권이 미국과 협조해야 할 현안은 크고 긴박하다. 트럼프 행정부의 보편관세 부과로 대미 수출 부담이 급등했고, 대미 무역흑자 축소와 미국 내 투자 확대 압박도 계속되고 있다. 방위비 분담금 협상은 22조 원 수준에서 타결이 전망되지만,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확대 요구가 함께 따라온다. 이란 제재 동참 압박은 한국의 중동 에너지 수입 구조에 직격탄이 되고, 반도체·AI 분야 대중 기술 수출 통제에서 미국과 보조를 맞추라는 요구는 한국 기업의 중국 매출과 직결된다. 벌써 한국에도 중동전쟁 부담금 등이 거론 되고있다.
| 현안 | 미국의 압박 | 한국의 부담 |
|---|---|---|
| 관세 | 대미 무역흑자 대폭 축소 | 수출 감소·기업 실적 타격 |
| 대미 투자 | 대규모 미국 내 제조 투자 | 국내 산업 공동화·외환 유출 |
| 방위비 분담금 | 대폭 인상 + 전략적 유연성 | 재정 부담·주권 논쟁 |
| 이란 제재 | 대이란 에너지 거래 중단 동참 | 중동 에너지 수입 구조 타격, 중동전쟁 부담금 |
| 반도체·AI 통제 | 대중 첨단기술 수출 차단 동참 | 중국 매출 손실·보복 우려 |
| 환율 | 원화 약세 시정 요구 | 수출 경쟁력과 환율 관리의 충돌 |
이 모든 현안에서 미국의 협조를 얻으려면 신뢰 자본이 필요하다. 신뢰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쌓인다. 스틸 대사는 무역 협상의 핵심 도구인 관세와 공급망 재편을 하원 세입위원회에서 직접 다뤄본 인물이다. 한국 정부가 대중 기술 통제에 소극적으로 임하거나, 공자학원 문제를 방치하거나, 서해 주권 수호에 미온적인 태도를 유지한다면, 그 간격은 관세와 투자 협상 테이블에서 고스란히 한국의 비용으로 돌아올 수 있다.
이재명 정권이 해야 할 것
이재명 정권이 실질적 대미 신뢰를 쌓으려면 지금 당장 구체적 행동이 필요하다. 스파이방지법을 조속히 제정하고, 공자학원 전수 실태 조사를 실시해야 한다. 서해 불법 구조물에 대한 국제법적 대응 원칙을 세우고, 외국 자금의 국내 유입을 투명하게 관리하는 외국대리인등록법(FARA) 수준의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대중국 반도체·AI 기술 수출 규제에서 미국과의 보조를 맞추는 것도 더 이상 선택이 아니다. 이것은 스틸 개인과의 관계 관리가 아니라, 신냉전 구도에서 한국이 어느 진영에 서 있는지를 행동으로 보여주는 문제다.
1905년 을사늑약 당시 고종은 열강에 친서를 보냈지만 어느 나라도 응하지 않았다. 자국의 이익에 따라 조선을 버린 것이다. 미셸 스틸은 친근한 한국인의 얼굴로 서울에 온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미국의 대한반도 전략 현안을 현장에서 감지하고 조율할 역할을 맡고 있다. 방중 직후 귀국해 트럼프와 악수하고, 연합훈련에 참가하면서 내부에서는 친중 정책을 유지하는 ‘적당한 친미 흉내’가 통한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스틸은 공산주의가 무엇인지를 가족의 역사에서 배운 사람이다. 그가 서울에서 보게 될 것이 무엇인지, 그것이 이재명 정권의 대미 외교 성적표가 된다.
칼럼니스트 박대석

참고자료
백악관, 상원 인사 인준 요청 명단 발표 (2026.4.13) / 연합뉴스·경향신문·서울경제·디지털타임스 (2026.4.13~14) / 주간경향, “실향민 2세에서 50년만의 모국행” (2026.4.14) / 미 하원 외교위 미중 전략경쟁 특별위원회 활동 기록 (2023~2025) / Fox News, “GOP Lawmakers Urge Clampdown on Confucius Institutes” / NTD Korea, “미셸 스틸이 경고하는 中 정권의 숨은 영향력” (2025.3.6) / FN투데이 통합자료 국제질서·중공 (202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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