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지방선거를 단체장 선거쯤으로 보면 상황을 오판하게 된다. 오는 6월 3일은 시장·도지사를 선출하는 날이지만, 동시에 이 나라에 아직 작동하는 제도적 균형추를 지키느냐 내주느냐를 결정하는 날이기도 하다. 중앙에서 권력의 균형이 깊이 기울어진 지금, 지방자치는 단순한 행정의 문제가 아니다.
▐ 권력 집중의 위험한 가속 — 사법 독립이 흔들리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에게는 수건의 형사혐의와 그에 따른 복수의 재판이 이어져 왔다. 그런데 취임과 함께 이미 진행 중이던 재판들이 전면 정지됐다. 헌법 제84조는 대통령의 재직 중 형사 소추를 금지한다. 그 취지는 국가 원수의 직무 보호에 있다. 문제는 이 조항의 본령을 넘어, 기소된 상태에서 이미 심리가 진행 중이던 재판까지 일괄 정지시키는 입법이 뒤따랐다는 점이다. 법조계와 헌법학자 일각에서 “헌법이 부여한 불소추 특권을 사법 정의의 지연 도구로 비튼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여당 소속 일부 의원들이 이른바 공소취소 모임을 구성하고, 국정조사 형식을 빌려 수사 중인 사건의 관련자들을 국회에 불러 정치적으로 압박한다는 비판이 거세다. 입법부가 수사와 재판의 흐름에 직접 개입해 특정 결론을 이끌려 한다는 우려다. 권력분립의 취지가 훼손될 수 있다는 경고는 법학계에서 먼저 나왔다.
2026년 2월 말 사흘 사이에 법왜곡죄·재판소원제·대법관 증원법이 순차적으로 통과됐다. 법조계와 야권은 이 세 법안의 결합이 사법부 독립성을 심각하게 약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 특히 대법관 정원이 14명에서 26명으로 늘어나면 현 대통령이 임기 중 22명 이상을 임명하는 구조가 된다. 행정부가 사법부 최고 인사의 절대 다수를 채우는 나라를 민주공화국이라 부를 수 있는지, 스스로 물어봐야 한다. 몽테스키외는 『법의 정신』에서 “같은 사람 혹은 같은 집단이 입법·행정·사법을 동시에 행사하면 자유는 없다”고 했다. 270년 전의 경고가 여의도에서 실험 중이다.
권력이 견제를 잃으면 부패로 기운다. 부패가 쌓이면 폭압을 부른다. 그 비용을 치르는 것은 권력자가 아니다. 이란은 말할 것도 없고, 베네수엘라는 1999년 차베스가 헌법 개정으로 사법부를 재편한 뒤 20년이 넘도록 그 후과를 국민이 감당하고 있다. 역사는 이 경로를 예외 없이 반복했다.
▐ 변한 미국과 세계질서, 멈춘 한국 정치 — 그 대가는 밥상 위에 쌓인다
세계는 빠르게 바뀌는데 한국 정치는 내부 권력 재편에 묶여 있다. 미국은 동맹국에도 상호관세를 부과하고, 핵심 산업의 자국 생산을 압박하며, 안보 분담 요구를 높이고 있다. 무역으로 먹고사는 나라에 통상 장벽과 안보 비용이 동시에 올라오는 것은 전례 없는 복합 압박이다. 호르무즈 해협의 긴장은 에너지 수급 불안을 가중시키고, 그 파장은 나프타 수급을 거쳐 주사기부터 쓰레기봉투까지 실생활 용품 가격에 얹힌다.
환율은 1,500원대를 넘나들며 고공행진이다. 코스피는 반도체 소수 종목이 끌어올린 지수이고, 그 지수가 체감 경기와 무관하다는 것을 개인 투자자들은 이미 지갑으로 안다. 정치적 불확실성이 심화될수록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깊어지고, 그 손실은 기관이 아닌 개인 주주에게 먼저 돌아온다. 세수 부족이 이어지면서 1인 가구의 장기보유특별공제 축소 논의가 고개를 드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치의 실패가 생활경제의 청구서로 배달되는 속도는, 지배층이 느끼는 것보다 훨씬 빠르다.
▐ 지방자치 — 예산과 시행령을 견제할 마지막 보루
중앙 권력이 한쪽으로 기울수록, 지방자치의 의미는 커진다. 현재 서울·부산·인천·울산·대전·세종·강원·충남·경남·경북 등 다수의 광역자치단체를 국민의힘이 맡고 있다. 민주당은 이번 선거를 앞두고 현역 광역단체장 5명이 모두 공천에서 밀려나는 내홍을 겪고 있다. 기초단체장과 광역·기초의원 수준에서도 완전한 일당 구도는 아직 아니다.
지방자치는 단순히 지역 행정을 독립시키는 장치가 아니다. 중앙정부가 예산 배분과 시행령으로 지역을 좌지우지하는 행정 집중에 제동을 걸 수 있는 현실적 견제 수단이다. 지방정부가 야당 계열일 때, 중앙의 일방적 시행령 통치와 예산 독점에 제도적으로 저항하는 목소리가 살아난다. 지방자치가 제 구실을 못 하면 그 통로마저 막힌다.
존 스튜어트 밀은 『대의정부론』에서 “지방자치는 자유로운 제도의 학교”라고 했다. 중앙 권력의 독주를 제어하는 훈련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현장이 지방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서울·부산을 비롯한 주요 광역지자체와 시·군·구까지 여당이 대거 장악하게 된다면, 다음 총선과 대선을 위한 반격의 발판도 함께 사라진다.
▐ 한국 유권자는 위기마다 뜻밖의 방식으로 균형을 만들어 왔다
한국 현대 정치에서 유권자가 권력에 일방통행을 허용한 적은 없다. 1995년 첫 민선 지방선거에서 집권당은 뒤통수를 맞았고, 2022년에는 문재인 정부 말기의 피로감이 정권 교체로 이어졌다. 어느 정권도 지방과 중앙을 동시에 영구히 지배하지 못했다. 공천권을 쥔 중앙 정치가 지역을 줄 세우려 할 때마다, 유권자는 그 틈새에서 균형추를 움직여 왔다. 특정 정당에 대한 맹목적 지지가 아니라, 국가 시스템을 지키려는 균형 본능이 작동한 것이다.
자유는 저절로 유지되지 않는다. 제퍼슨이 말했듯 자유의 나무는 시민의 경계심으로 자란다. 선거에서의 무관심은 중립이 아니다.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선택은, 기울어진 쪽에 무게를 더 얹는 것과 같다.
▐ 미워도 균형, 답답해도 견제 — 시민의 시대적 소명
보수정당이 완전무결해서가 아니다. 국민의힘은 공천 갈등과 내홍으로 중도층의 마음을 스스로 깎아왔다. 그 한계를 인정하고도, 이번 선거에서 지방 권력의 균형을 지켜야 할 이유는 분명하다. 지방에서의 견제가 살아 있어야 이재명 정부의 일방적 국정 운영에 제동이 걸리고, 다음 총선·대선에서 권력이 국민을 두려워하게 만드는 신호가 된다. 미워도 균형은 세워야 한다. 답답해도 견제는 살아 있어야 한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정당하게 민의를 얻어 집권한 정부를 왜 견제해야 하느냐”고 물을 것이다. 옳은 질문이다. 선거 승리는 정당성의 출발점이다. 그러나 선거로 얻은 권력이 수사와 재판의 영역까지 정치적으로 압박하고, 사법부의 인적 구성을 독점 가까이 장악하려 한다면, 그것은 민주주의의 형식으로 민주주의를 잠식하는 것이다. 정당성과 독주는 별개다.
6월 3일의 투표용지가, 권력의 폭주를 멈세울 유일한 제동장치다. 진영 논리에 묶인 팬덤이 아니라, 자기 삶의 무게로 국가를 판단하는 성숙한 시민의 손에 균형의 열쇠가 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견제와 균형의 표가 쌓인다면, 그것은 특정 정당의 승리가 아니라 자유민주주의 시스템의 승리다. 삼권분립의 긴장이 흔들리는 중앙을, 지방에서부터 버텨내는 것. 그것이 오늘을 사는 자유 시민의 소명이다.
논설위원 박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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