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글로 남을 가르칠 만큼의 능력은 없다. 그러나 지금 내가 둥지를 튼 한국이 점점 부끄러운 나라로 변해가기에 한마디 한다.
누구나 “펜은 칼보다 강하다”라는 말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정치에 깊은 관심을 가진 사람이 아니면 저 말에 담긴 참뜻을 다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펜이 칼보다 강하다는 말은 1800년대 초 영국의 한 작가가 쓴 희곡 작품에서 처음 나왔다고 한다. 그러나 저 말이 부정할 수 없는 진리라는 것은 인류의 정치 역사가 잘 증명해 준다.
멀리 볼 것도 없이 북한을 보라. 물론 일부 사람들은 “북한은 공개총살과 정치범 수용소로 국민을 옴짝 못하게 만든 나라”라고 할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북한을 겉만 보는 사람들이다.
북한은 전 국민이 노동당 주위에 똘똘 뭉친 나라라는 것을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오죽하면 굶주림을 피해서 중국으로 도망쳐 나온 북한 사람들이 “우리 수령님을 욕하지 말라! 아래 놈들이 나쁜 것이지 우리 수령님은 잘못이 없다.”라고 악을 쓸 정도겠는가?
2300만의 국민을 이렇게 무섭게 세뇌시킬 수 있는 힘은 과연 무엇인가? 그것은 총도 정치범 수용소도 아니다. 다름 아닌 선전선동의 도구인 펜 끝에서 나온 글의 힘이다.
총과 정치범수용소는 국민에게 공포심은 줄 수 있지만 세뇌된 충성심은 절대로 줄 수 없다.
펜 끝에서 나온 글의 힘 때문에 북한 사람들은 불타는 집에서도 자기 재산이 아닌 김일성 초상화를 안고 나오며 침몰하는 배에서도 김일성의 초상화를 안고 바다로 뛰어드는 전사가 된 것이다.
노동당이 발표하는 김일성 가문의 업적을 읽는 북한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며 만세를 부른다. 고난의 행군 때에도 “오직 수령과 노동당만 믿으라”는 글 몇 자로 300만 명을 가만히 앉아서 굶어죽는 바보로 만들었다.
황장엽이 쓴 “주체사상에 대하여”이라는 책 한 권이 수천, 수만의 대한민국 청년들을 자기 조국을 배신하고 김일성 가문에 충성하는 주사파로 만든 것도 바로 글의 힘이다.
펜 끝에서 나온 글 몇 자가 힘없는 인간을 전사로도 만들고 또 반역자로도 만든다. 글 몇 자가 한개 나라의 국민을 미개한 바보로도 만들고 또 강한 민족으로 만든다.
총칼로서는 감히 엄두도 못 낼 힘을 가진 그 글이 바로 하나의 작은 펜 끝에서 나온다.
내가 오늘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글 한쪽을 잘못 써서 자신은 물론 대한민국을 국제적인 비난과 조롱거리로 만들고 우방국을 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4월6일 국무회의에서 가짜 뉴스 유포를 반란 행위로 규정하며 강력 대응을 지시했다. 그런 대통령이 4일 후에는 이스라엘군 병사들이 팔레스타인 아동을 고문한 후 지붕에서 던져버렸다고 주장하는 팔레스타인인 ‘Jvnior’ 계정의 글을 X에 리트윗하면서 “이게 사실인지, 사실이라면 어떤 조치가 있었는지 알아봐야겠다. 우리가 문제 삼는 위안부, 유태인 학살이나 전시 살해는 다를 바가 없다”고 글을 썼다.
그런데 그 영상은 지금의 전쟁이 아닌 2024년 이스라엘군의 서안지구 카바티야 작전 당시 촬영된 것이며 교전 중 사망한 팔레스타인 무장 대원의 시신을 처리하는 장면이었다.
한마디로 국내에서 가짜 뉴스 유포를 반란 행위로 처벌하라고 떠들던 이재명 자신은 가짜 뉴스를 전 세계에 유포하는 부끄러운 일을 했던 것이다.
그 결과로 이재명 대통령의 정치 성향과 자질 문제는 세상에 알려졌고 이제는 한국과 이스라엘 간의 외교적 마찰로까지 번져간다. 한마디로 대한민국 대통령의 망신이자 대한민국의 국격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 부끄러운 사건이다.
물론 글이라는 것이 매우 중요하고 유용하지만 무작정 좋은 것만은 아니다. 진실이 아닌 글을 잘못 쓰면 오히려 무서운 부메랑이 되어 글 쓴 자와 집단의 명예와 존재까지 위협 한다.
철없는 아이가 칼 장난을 하면 자신의 피만 볼 수 있지만 뭐가 진실인지를 구분도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글 장난을 함부로 하면 자신은 물론 패가망신을 불러온다.
칼럼니스트 소개
김태산은 1952년 북한 자강도에서 태어나 평양 인민경제대학 무역학과를 졸업한 뒤, 북한 내각 산하 경공업성에서 20년간 무역 전문가로 활약하며 국제 무대에서 역량을 발휘했다. 체코 주재 북한-체코 신발기술 합작회사 사장 등으로 해외 경제 협력의 최전선에서 활동했으며, 체제의 한계를 극복하고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2003년 가족과 함께 남한으로 망명했다. 남한에서는 새로운 환경에 빠르게 적응하며 교육 사업에 헌신했고, 북한사회연구원 부원장 등으로 활동하며 남북관계와 북한 문제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과 경험을 사회에 기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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