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기름 한 방울에 흔들리는 하늘
하늘이 흔들리고 있다.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으로 호르무즈 해협 봉쇄 위기가 현실화하자, 싱가포르 항공유 현물가격이 급등하며 유럽 항공유는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향후 6주 내 일부 유럽 국가에서 제트연료 구조적 부족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고, 유나이티드항공은 이미 향후 6개월 운항 계획을 약 5% 축소하기로 결정했다. 루프트한자는 수요 감소와 항공유 부족에 대비해 일부 항공기를 운항 중단하는 방안이 포함된 비상계획 수립을 위해 전담팀을 꾸렸고, 항공사들은 연료비를 상쇄하기 위해 항공권 가격과 각종 수수료를 인상하고 있다.
베트남은 일부 자국 공항에서 외국 항공기의 급유를 제한했고, 비엣젯항공과 베트남항공은 한국-베트남 일부 노선 운항을 중단했다. 여름 성수기를 앞두고 항공 대란이 현실이 됐다.
그런데 묻지 않을 수 없다. 택배 드론이 하늘을 날고, 전기오토바이가 거리를 달리고, eVTOL 항공 택시가 이미 시험 운항에 들어갔다. 전기차는 대중화 단계에 접어들었다. 군용 잠수함은 핵연료 하나로 수개월을 항해한다. 소형 전기비행기와 도심 항공 모빌리티는 이미 현실이 됐다.
그런데 수백 명을 태우는 대형 상용 여객기만큼은 2026년에도 중동 호르무즈 해협에 생존을 의존하고 있다. 이 아이러니가 단순한 기술 문제일 리 없다.
▐ 전기 항공은 이미 시작됐다, 문제는 확산 속도다
전기 항공이 불가능하다는 말은 구시대의 오해다. 소형기와 eVTOL, 단거리 노선에서는 상용화가 이미 시작됐거나 임박했고, 남은 쟁점은 가능 여부가 아니라 확산 속도와 제도 전환에 가깝다.
리튬-실리콘 배터리 효율은 2021년부터 2024년까지 30% 향상됐고, AI 기반 비행 제어 시스템이 24개 회사에서 개발 중이며 2026년까지 자율 eVTOL 운영 전망이 제시되고 있다. 배터리 에너지 밀도 향상과 전고체 배터리 기술 발전이 eVTOL과 단거리 전기항공의 상용 가능성을 꾸준히 끌어올리고 있다.
노르웨이는 2040년까지 1시간 30분 이내 단거리 항공의 전기화를 목표로 제시하고 있으며, 스칸디나비아 주요 항공사 위데뢰에는 롤스로이스·테크남과 함께 이 시장을 겨냥한 전기항공기 도입을 추진해 왔다. 항공기 전기화 시장은 2026년 약 124억 달러에서 2034년 약 400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핵심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전기차와 드론이 이미 대중화됐음에도 왜 대형 상용 항공의 전동화는 이토록 느린가. 배터리 에너지 밀도의 물리적 한계 탓인가. 부분적으로는 맞다. 연료를 태울수록 가벼워지는 화석연료 항공기와 달리, 전기 비행기는 착륙 순간까지 배터리 무게가 줄지 않는다.
장거리 대형기에 적용하기까지 기술 성숙 시간이 더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이 단거리 전기항공 전환마저 늦추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더 큰 이유는 기술 연구실이 아니라 이해관계 구조 안에 있다.
▐ 에너지 안보 위협의 본질은 기득권 구조다
현재의 항공 에너지 구조는 시장친화적인 것이 아니다. 중동의 분쟁 하나, 호르무즈 해협의 봉쇄 위협 하나에 대한민국 하늘길의 생사여탈권이 쥐어진 구조는 에너지 안보의 관점에서 심각한 취약성이다.
항공유는 항공사 영업비용의 약 30% 내외를 차지하는 핵심 변수로, 유류할증료를 통해 일부 비용을 전가할 수는 있으나 경기 둔화로 수요가 위축될 경우 운임 인상 여력이 제한되어 전반적인 마진 하락 압력은 불가피하다. 지정학적 충격이 올 때마다 항공사 신용등급과 노선망이 흔들리는 반복 구조가 고착된 것이다.
진정한 에너지 안보는 외부 충격에 흔들리지 않는 에너지 주권에서 나온다. 그 관점에서 보면 전기배터리 항공으로의 전환은 친환경 정책이 아니라 중동 에너지 종속에서 벗어나기 위한 국가 생존 전략이다.
그렇다면 세계는 왜 이 전환을 서두르지 않는가. 대형 항공사, 항공기 제조사, 정유사, 공항 운영체, 리스금융, 정비체계, 항공유 인증 네트워크 전체가 현재의 화석연료 체계 위에 세워져 있기 때문이다. 이 거대한 자산 구조에서 급격한 전동화는 기존 이해관계자 모두에게 자산 가치 훼손을 의미한다. 그래서 세계는 전기 항공으로 직행하는 대신 SAF라는 완충재를 선택한다.
EU의 ReFuelEU Aviation 규정은 2025년 2%로 시작해 2050년 SAF 비중 70%를 최종 목표로 설정했고, 영국은 2025년 2%, 2030년 10%, 2040년 22%의 의무 공급 목표를 제도화했다. 방향은 맞다.
그러나 지속 가능한 항공유(SAF)는 기존 내연기관 엔진을 그대로 쓸 수 있는 연료다. 항공사가 기체를 바꾸지 않아도 되고, 정유사가 정제 인프라를 바꾸지 않아도 된다. 기존 자산은 보존되고, 후발주자의 새로운 진입 경로는 막힌다. SAF를 “혁신”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이유다. 일각에서는 SAF 의무화 체계를 거대 정유사와 대형 항공사가 짜놓은 그린 카르텔이라고 비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DJI의 교훈, 하늘에서 반복될 수 있다
중국이 이 전환의 가장 날카로운 위협이다. 중국은 공산당 주도의 산업 육성 정책 아래 업스트림 탄소섬유 소재와 고에너지 배터리, 중간 단계 항공기 제조, 현지화된 에어택시 모델 운영까지 아우르는 세계에서 가장 완결된 eVTOL 공급망을 갖추고 있다.
DJI는 전 세계 민간 드론 시장을 장악했다. 군사·물류·농업·방송까지 수직 계열화된 중국 드론에 종속된 결과, 이제 서방 국가들은 안보 우려를 이유로 DJI 드론을 퇴출하려 해도 대체재가 없는 현실에 직면해 있다. eVTOL과 전기 항공 모빌리티 시장에서 이 비극이 반복될 수 있다. 한국이 배터리 기술을 갖고 있으면서도 플랫폼을 짜지 않으면, 미래 항공 모빌리티 시장에서도 중국이 만든 기체에 한국 배터리를 얹어주는 하청 구조가 고착된다.
▐ AMC, 움직이는 모든 것은 하나의 산업이다

이 문제를 돌파하는 설계도가 AMC(All Mobility Center) 전략이다. 전기차, 드론, 전기비행기, 로봇, 선박, 우주발사체를 서로 다른 산업으로 보는 시각 자체가 낡은 프레임이다. 이 모두는 배터리(동력), 경량 소재(바디), 반도체와 AI 제어(용도)라는 동일한 기술 기반 위에 서 있다. 껍데기의 용도는 달라도 심장은 같다. 결국 ‘움직이는 모든 것’은 올모빌리티라는 하나의 범주다.
지금 한국은 정반대로 움직이고 있다. 자동차는 현대차, 항공은 한화, 드론은 중소기업이 각자 개발하고, 예산은 산업부·국방부·과기부가 부처별로 나눠 쪼갠다. AMC는 이 분절 구조를 끊고, 공통기술과 공통 인프라를 하나의 플랫폼으로 통합하자는 전략이다.
국가 주도 계획경제가 아니다. 민간 혁신을 가로막는 칸막이 규제를 걷어내고 공통 표준과 실증 인프라를 제공하는 플랫폼 국가 전략이다. 분산된 R&D 예산을 일원화하면 중복 투자가 줄고 공통기술 축적 속도가 빨라진다.

구체적 공간 배치는 이미 설계돼 있다. 고양시는 R&D 설계와 AI 통합관제 거점, 사천은 기체 제조와 비행 인증, 구미는 배터리·반도체·전력전자, 울산은 전동화 부품과 양산체계를 각각 담당하는 4각 네트워크다.
고양시가 두뇌 역할을 맡기에 적합한 이유는 분명하다. 서울 인접성, 글로벌 연구인력 접근성, 킨텍스라는 국제 비즈니스 플랫폼, 그리고 한반도 전체 물류의 중심 위치가 맞물린다. 글로벌 자본과 인재는 정주 여건과 인프라가 없는 곳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고양에서 짜인 설계도와 투자 유치의 온기는 사천·구미·울산 제조 거점으로 자연스럽게 퍼진다.
동력 선택도 지금 당장 결정할 필요가 없다. 단거리 도심 항공과 eVTOL은 배터리 중심, 중거리 특수 임무 비행체는 하이브리드·수소 병행, 장거리 대형 항공은 과도기에 SAF 활용이라는 3단계가 AMC 생태계 안에서 동시 수용 가능하다. 기술 선택이 아니라 기술 통합이 AMC의 핵심 가치다.
▐ 한국이 지금 결단해야 하는 이유

AI 시대에 모빌리티의 가치는 단순한 이동이 아니다. 움직이는 스마트폰, AI가 탑재된 올모빌리티 로봇이 생산하고 배송하고 지키는 세상이 이미 오고 있다. 그 플랫폼 표준을 누가 먼저 장악하느냐가 다음 산업 패권의 기준이 된다.
원유 한방울 안나는 한국이 세계적인 항공유 정제·수출 허브이자 아시아의 핵심 에너지 공급국 중 하나다. 배터리는 LG·삼성·SK가 글로벌 시장을 분점하고, 반도체는 삼성과 SK하이닉스가 선단 공정을 주도한다. 없는 것은 이것들을 하나로 묶는 통합 플랫폼과 정치적 결단이다.
추진 순서는 현실적이어야 한다. 2026~2027년 안에 전기비행체·드론·eVTOL 실증 특구를 지정하고 항공 전동화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 공공조달로 군수·소방·재난·물류 분야 전기비행체 수요를 먼저 창출하고, 공항과 버티포트에 급속충전·배터리 교체 국가 표준을 확립해야 한다. 2028~2030년에 단거리 노선 상용화를 실증하고, 2031~2035년 항공·드론·로봇·자동차의 통합 산업화를 완성하는 3단계가 현실적 로드맵이다.
물론 기득권의 저항이 없을 것이라는 낙관은 금물이다. 부처 칸막이와 업계 이해관계는 통합 전략의 첫 번째 장애물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란 전쟁이 다시 한번 보여줬듯이, 에너지 종속 구조는 언제든 지정학 충격에 무방비로 노출된다. 기득권의 저항을 감수하고 구조를 바꾸는 비용보다, 현상 유지를 선택했을 때 치르는 비용이 더 크다.
배터리 강국이 전기비행기 논의에서 뒤처진다면 그것은 전략의 부재가 아니라 전략의 방기다. AMC는 그 방기를 끝낼 설계도다. 지금 결단하면 된다.
칼럼니스트 박대석

[참고자료]
국제기구·규제: IEA 제트연료 경고(2026.4), EASA ReFuelEU Aviation 규정(2050년 SAF 70%), 영국 SAF Mandate(2030년 10%·2040년 22%)
시장 데이터: Fortune Business Insights 항공기 전기화 시장 전망, Mordor Intelligence eVTOL 시장 보고서, 삼일PwC경영연구원 미국-이란 분쟁 영향 보고서(2026.3)
언론: 뉴시스(2026.4.21), 블로터(2026.4.7), 전자신문(2026.4.8), 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인사이드
박대석 칼럼: 한경(202601240264Q), 브런치(@cosmobi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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