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혼생활의 절반도 아닌 무려 수십 년을 떨어져 살면서도 끝내 이혼하지 않은 연예인 부부가 있다. 1960년대 대한민국 최고의 스타 커플로 불렸던 배우 신성일과 엄앵란이다.
두 사람은 화려한 결혼식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지만, 이후 오랜 별거와 여러 굴곡을 겪으면서도 신성일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법적으로 부부로 남았다.

두 사람의 인연은 영화계에서 시작됐다. 신성일과 엄앵란은 여러 작품에서 함께 호흡을 맞추며 가까워졌고, 1964년 결혼식을 올렸다. 당시 두 사람은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청춘스타였다.

서울 워커힐호텔에서 열린 결혼식 역시 엄청난 화제를 모았다. 초청받은 하객뿐 아니라 두 사람을 직접 보기 위해 몰려든 시민들까지 수천 명이 운집했고, 주변이 크게 혼잡해질 정도였다. 당시 약 4000명이 결혼식을 지켜본 것으로 전해지면서 두 사람의 결혼은 ‘세기의 결혼식’으로 불렸다.
하지만 화려했던 시작과 달리 결혼생활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성격과 생활 방식이 크게 달랐던 두 사람은 1970년대 중반부터 사실상 별거 생활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엄앵란은 서울에서 가족들과 생활했고, 신성일은 자신의 공간에서 지내며 각자의 삶을 이어갔다.
신성일의 외도 문제까지 더해지면서 부부 관계에도 적지 않은 상처가 생겼다. 신성일은 생전 자신의 외도 사실을 공개적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일반적인 부부라면 이혼으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두 사람은 법적으로 관계를 정리하지 않았다.
신성일은 과거 방송과 인터뷰 등에서 이혼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두 사람이 헤어지면 서로에게 손해라는 취지로 말한 바 있다. 또한 수많은 사람의 축복 속에 결혼한 만큼 자신들을 지켜봐 온 대중에 대한 책임감도 언급했다. 결국 두 사람은 부부라는 틀을 유지하면서 서로의 생활에는 일정한 거리를 두는 방식을 택했다.
그렇다고 완전히 남처럼 살아간 것은 아니었다. 오랜 별거 속에서도 가족이라는 연결고리는 계속됐다. 신성일이 수감 생활을 하던 시기에는 결혼기념일을 맞아 엄앵란에게 장미를 보내며 마음을 표현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특히 말년에 접어들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다시 주목받았다. 엄앵란이 유방암 수술을 받을 당시 신성일이 곁을 지켰고, 이후 신성일이 폐암으로 투병하자 엄앵란 역시 치료 과정에서 남편을 챙겼다. 자녀들도 두 사람이 일반적인 부부와는 다른 방식으로 서로를 가족이자 오랜 ‘동지’처럼 여겼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전했다.
결국 신성일과 엄앵란은 오랜 시간 한집에서 살지 않았지만 이혼을 선택하지 않았다. 1964년 결혼한 두 사람은 신성일이 2018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법적인 부부 관계를 유지했다. 함께 생활하는 대신 각자의 공간을 인정했던 두 사람은 수십 년의 별거 속에서도 마지막까지 가족이라는 인연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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