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연합(EU)의 살아있는 동물 운송 규정 개정 논의가 동물복지 기준과 농업 지원 체계 문제로 확장되고 있다. EU 집행위는 2023년 12월 동물 운송과 관련 작업에 관한 새 규정안을 제안했다. 해당 안은 기존 규정 1/2005를 대체하는 방식으로 마련됐으며, EU 안팎에서 운송되는 연간 약 16억 마리의 동물을 대상으로 한다.
현행 EU 동물운송 규정은 2005년 제정된 틀을 기반으로 한다. 집행위는 기존 규정이 과학적 근거, 디지털 관리 체계, 시민의 동물복지 요구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고 보고 개정을 추진해 왔다. 새 규정안은 장거리 운송 제한, 동물별 최소 공간 확대, 취약 동물 보호, 극한기온 운송 조건 강화, GPS 등 디지털 도구를 통한 집행력 보강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핵심 쟁점은 운송 시간이다. 유럽의회 입법 추적 자료에 따르면 도축 대상 동물의 최대 운송 시간은 9시간으로 제안됐다. 그 밖의 동물은 최대 21시간 운송할 수 있지만, 10시간 이동 뒤 최소 1시간 휴식이 포함돼야 한다. 이후 운송을 계속하려면 차량 밖에서 24시간 휴식하도록 하는 내용도 담겼다.
기온 기준도 강화 대상이다. 섭씨 25~30도가 예상되는 경우 운송 시간은 최대 9시간으로 제한되고, 낮 기온이 30도를 넘으면 야간 운송만 허용하는 방식이다. 야간 기온까지 30도를 넘을 경우에는 열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동물에게 더 넓은 공간을 제공하도록 했다. 임신한 동물, 젖을 떼지 않은 송아지, 산란을 마친 암탉 등 취약 동물에 대한 별도 요건도 포함됐다.
운송 규정 개정은 사육 단계의 동물복지와도 연결된다. 동물복지 기준이 농장 안의 사육 환경에만 머물지 않고, 농장-시장-도축장으로 이어지는 이동 과정까지 확장되기 때문이다. 장거리 이동 중 스트레스와 탈수, 부상, 온도 노출은 동물복지의 주요 사각지대로 지적돼 왔다. EU 집행위도 장거리 운송 과정에서 동물의 스트레스와 고통을 줄이고, EU 밖으로 수출되는 동물에 대해서도 보호 기준을 강화하는 것을 목표로 제시했다.
다만 규정 강화는 농가와 운송업계의 비용 문제를 동반한다. 운송 시간이 짧아지고 공간 기준이 확대되면 같은 차량으로 옮길 수 있는 동물 수가 줄어들 수 있다. 휴식·급수 시설, 차량 설비, 운행 기록 관리, 국경 밖 운송 통제도 추가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 동물복지 기준을 높이는 정책이 현장 투자와 보조 체계 없이 추진될 경우 농가 부담 논쟁으로 번질 수 있는 구조다.
이 때문에 다음 공동농업정책(CAP)과 동물복지 법제 개정을 함께 다뤄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유럽 동물보호단체 연합체인 유로그룹포애니멀스는 지난 21일 발표한 입장문에서 2028년부터 적용될 다음 CAP가 동물복지 전환을 지원해야 한다고 밝혔다. 새 규정은 농가의 장기 투자 판단에 영향을 주는 만큼, CAP가 전환 비용과 위험을 줄이는 재정적 장치가 돼야 한다는 취지다.
EU 집행위가 공개한 post-2027 CAP 자료도 농업 지원 구조 개편과 맞물려 있다. 집행위는 2028~2034년 CAP가 농가 소득 지원, 위기 대응, 농촌 안정 기능을 계속 수행하도록 하는 방향을 제시했다. 지원 대상은 보다 세분화하고, 농장 현대화와 새로운 관행·기술 도입 같은 투자 지원도 소득 지원 범위 안에서 다룰 수 있도록 했다. 동물복지 기준 강화 비용을 어떤 방식으로 농가 지원과 연결할지는 향후 입법·예산 논의 과정에서 구체화될 사안이다.
입법 절차는 아직 진행 중이다. EU 집행위 자료 기준으로 동물운송 개정안은 유럽의회와 EU 이사회가 심사하는 단계에 있다. 이번 논의는 농장동물 복지가 사육 방식의 문제를 넘어 물류, 수출, 보조금, 소비자 신뢰와 연결되는 흐름을 보여준다. 국내에서도 농장동물 복지 논의가 표시와 인증, 사육 환경을 넘어 운송·도축 전 단계까지 확장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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