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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군국주의의 ‘대동아공영권’…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면?

최보식의언론

[최보식의언론=정광제 자유주의작가회의 사무총장] 

일본의 대동아공영권 지도와 선전물
일본의 대동아공영권 지도와 선전물

대동아공영권은 흔히 일본 군국주의가 아시아 침략을 합리화하기 위해 만든 구호로 규정된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만으로는 그것이 등장한 국제정치적 배경을 충분히 해명할 수 없다.

19세기 동아시아는 평화로운 나라들을 일본이 갑자기 침범하면서 무너진 세계가 아니었다. 영국·프랑스·러시아·네덜란드가 군함과 산업력을 앞세워 아시아를 분할했고, 미국까지 태평양으로 진출하던 시대였다. 일본의 선택은 바로 이 거대한 압력 속에서 이루어졌다.

영국은 인도를 지배한 뒤 버마·말레이반도·홍콩으로 세력을 넓혔다. 프랑스는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를 묶어 인도차이나 식민지를 건설했고, 네덜란드는 인도네시아를 장악했다. 러시아는 시베리아를 횡단하여 태평양 연안에 도달했다. 1858년 아이훈조약과 1860년 베이징조약으로 아무르강 이북과 연해주를 획득하고 블라디보스토크를 건설했다. 동아시아의 해상과 대륙 양쪽에서 서양 열강의 포위망이 좁혀지고 있었다.

1840년 아편전쟁은 일본에 충격적인 경고였다. 세계 최대 수준의 인구와 영토를 가진 청나라조차 영국의 군사력 앞에서 무너졌다. 청은 1842년 난징조약을 통해 홍콩을 넘기고 항구를 개방했으며, 이후 열강은 치외법권과 조차지, 경제적 특권을 차례로 확보했다. 일본인들은 청나라의 몰락을 보며 국력이 없는 나라는 주권도 지킬 수 없다는 냉혹한 현실을 배웠다.

1853년 미국의 페리 함대가 우라가에 나타나 개항을 요구했다. 미국은 유럽 국가는 아니었지만 유럽에서 만들어진 해양 팽창과 불평등조약의 방식을 그대로 사용했다. 일본은 1858년 미일수호통상조약을 비롯한 불평등조약을 받아들였다. 관세 자주권도 없고 외국인의 치외법권도 인정해야 했다. 막부의 무능에 대한 분노와 국가 존망의 위기가 메이지유신을 낳았다.

메이지정부가 추진한 부국강병과 문명개화는 식민지가 되지 않기 위한 국가 개조였다. 근대적인 군대와 해군을 창설하고 철도·공장·은행·학교·법원을 세웠다. 징병제와 조세제도를 정비하고 유럽의 헌법·법률·행정을 도입했다. 일본은 서양 문명을 숭배해서가 아니라 서양의 지배를 피하기 위해 서양을 배웠다. 독립을 지킬 수 있는 힘을 갖추는 것이 당시 일본 국가의 최우선 과제였다.

조선과 만주를 둘러싼 일본의 위기의식도 허구가 아니었다. 러시아가 한반도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부동항을 확보하면 일본 열도는 대륙 세력의 직접적인 압력에 놓이게 된다. 일본 지도부가 조선을 자국 방위의 전초로 인식한 까닭이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는 이권과 세력권을 둘러싼 욕망이 있었지만, 러시아의 남하를 저지해야 한다는 안보적 판단도 작용했다.

1895년 대만 획득, 1905년 남만주 진출, 1910년 한국 병합을 거치며 일본은 제국으로 변했다. 식민지로 전락하지 않으려 시작한 개혁이 주변 지역을 지배하는 팽창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 모순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당시 강대국들은 해외 영토와 군사기지, 자원 공급지와 배타적 시장을 국력의 필수 조건으로 간주했다. 일본은 자신이 만들지 않은 국제질서에 들어가 그 질서의 방식으로 경쟁했다.

기존 열강이 일본의 진출을 견제한 이유도 순수한 도덕감정 때문은 아니었다. 영국·프랑스·네덜란드는 아시아의 광대한 식민지를 보유하고 있었다. 미국은 필리핀과 괌을 차지하고 중국 시장에 문호개방을 요구했다. 그들이 문제 삼은 것은 식민지배라는 행위 자체보다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협하는 새로운 경쟁자의 출현이었다. 아시아 분할을 먼저 끝낸 국가들이 후발국의 진입을 침략이라고 비난한 셈이다.

1930년대에 들어 일본의 자원 취약성은 심각한 문제가 됐다. 공업과 해군을 유지하려면 석유·철광석·고무가 필요했지만 대부분을 해외에 의존했다. 1931년 만주사변과 1937년 중일전쟁 이후 미국·영국·네덜란드는 경제적 압박을 강화했다. 1941년 미국의 자산 동결과 석유 수출 중단은 일본의 산업과 군사력을 마비시킬 수 있는 조치였다. 비축량이 소진되면 항공기와 함대는 움직이지 못하고 강대국의 지위도 무너질 상황이었다.

도쿄의 정책결정자들이 마주한 길은 좁았다. 중국에서 철수하고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이거나, 자원 고갈을 기다리거나, 동남아시아로 진출하여 독자적인 공급망을 확보해야 했다. 일본은 마지막 방안을 선택했다. 1940년 공식화된 대동아공영권은 일본·만주국·중국·동남아시아를 하나의 정치·경제 블록으로 묶어 서양 중심의 시장과 봉쇄에서 벗어나려는 구상이었다.

이 주장이 아시아에서 일정한 호소력을 얻었던 배경도 살펴야 한다. 당시 인도와 버마·말레이는 영국, 인도차이나는 프랑스, 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 필리핀은 미국의 지배 아래 있었다. 일본이 “아시아인을 위한 아시아”를 외쳤을 때 그것을 단순한 거짓말로만 듣지 않은 사람들이 존재했다. 서양인의 통치에서 벗어나려던 민족주의자들에게 일본의 군사력은 독립을 얻기 위한 현실적인 수단으로 보였다.

인도네시아의 수카르노, 버마의 아웅산, 인도의 수바스 찬드라 보스가 일본과 협력한 것도 이러한 이유였다. 1942년 싱가포르 함락은 백인이 아시아인을 영원히 지배할 수 있다는 신화를 무너뜨렸다. 1943년 도쿄에서 열린 대동아회의에서는 자주독립·상호협력·인종차별 철폐가 선언됐다. 일본의 패전 뒤 유럽 국가들이 과거의 식민체제를 복원하려 했지만, 이미 각성하고 무장한 민족운동을 이전처럼 통제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대동아공영권이 평등한 연합체로 운영됐다는 뜻은 아니다. 일본군은 점령지역의 석유·고무·식량을 전쟁에 투입했고, 주민에게 노동과 희생을 요구했다. 군정의 강압과 민간인 피해도 발생했다. 서양의 인종주의를 비판하면서 일본을 정점으로 하는 위계를 세운 것 역시 부정하기 어렵다. 아시아 해방이라는 이상은 총력전의 필요 앞에서 자주 훼손됐다.

그러나 점령정책의 잘못과 국가 생존의 필요성은 구별해서 판단해야 한다. 전쟁범죄를 규명한다고 해서 일본이 직면했던 군사적 위협과 자원 봉쇄까지 허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사용한 수단에 책임을 묻는 일과 독립적인 경제·안보권을 확보하려 했던 목적을 악마화하는 일은 동일하지 않다. 일본에도 자국의 존립을 지키려는 권리가 있었다.

서양 국가들은 수십 년에서 수백 년 동안 아시아인을 통치하고 자원과 시장을 장악했다. 그들의 행위는 문명 전파와 근대화로 포장하면서 일본의 팽창만 절대악으로 규정한다면 공정한 평가가 아니다.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려면 영국의 인도 지배, 프랑스의 인도차이나 통치, 네덜란드의 인도네시아 수탈, 미국의 필리핀 점령도 함께 심판해야 한다. 승전국이라는 이유로 제국 건설의 책임에서 면제될 수는 없다.

대동아공영권에는 서양 세력을 몰아내고 아시아의 독자적인 질서를 세우려는 이상과 일본이 지역의 주도권을 장악하려는 국가적 욕망이 함께 들어 있었다. 그것은 순수한 해방운동도 아니었고, 오직 약탈을 가리기 위한 위장막도 아니었다. 자위와 팽창, 연대와 지배, 반식민주의와 군사주의가 교차한 복합적인 전략이었다.

일본은 제국주의를 발명하지 않았다. 먼저 세계를 나눈 국가들의 제도와 행동방식을 모방했다. 먹히지 않기 위해 힘을 길렀고, 힘을 유지하려 세력권을 넓혔으며, 봉쇄를 돌파하려 전쟁에 들어갔다. 결과는 참혹한 패전이었지만 그 과정을 탐욕 하나로 설명할 수는 없다.

대동아공영권을 재판하려면 유럽 제국주의의 동진과 러시아의 남하, 미국의 태평양 진출부터 함께 보아야 한다. 일본의 과오를 숨길 이유는 없지만 일본에만 현대의 도덕률을 적용해서도 안 된다. 그것은 침략을 미화하는 태도가 아니라 모든 제국을 같은 저울에 올려놓자는 요구다.

대동아공영권은 서양이 장악한 세계에서 일본이 살아남기 위해 마련한 독자적 생존 구상이었다. 그 실행 과정은 비판받을 수 있다. 그러나 생존하려 했다는 사실 자체는 죄가 아니다. 일본에 필요했던 것은 서양의 허락이 아니라 스스로 운명을 결정할 힘이었다. 그 절박함을 제외하고 대동아공영권을 말한다면, 남는 것은 승전국이 작성한 판결문뿐이다.

#대동아공영권 #유럽제국주의 #동아시아근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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